1.
미국 코미디언들이 입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오바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바마가 코미디언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바마 스타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적이고 신중하고 우스갯소리도 별로 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잦은 말실수에 다소 ‘멍청한’ 이미지”의 부시와는 달리 오바마는 코미디언들에게 놀림감을 별로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낙담하는 건 아니랍니다. 미국 코미디언들은 오바마 대신 조지프 바이든 차기 부통령을 ‘밥’으로 삼으려 한다고 합니다. NBC 투나잇쇼의 제이 레노는 “신은 우리에게 바이든을 내려주셨다”고 자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이든은 장광설에 말실수가 많다고 하네요.
‘경향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2.
그러고보니 미국 대선이 다시 떠오르네요. 제 철 만난 메뚜기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캐나다 퀘백 주의 유명 코미디언인 마르크 앙토앵 오데트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사칭’해 페일린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습니다. ‘멍청한’ 페일린이 ‘가짜 사르코지’ 앞에서 “저는 8년 안에 대통령이 될 것 같아요”라고 허풍을 떨다가 전세계적으로 망신을 산 일이 있습니다.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낚인’ 것이죠.
3.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저런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조폭과 바보가 활개 치는 프로그램은 많아도 정치인이 직접 출연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정치인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조롱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또한 없습니다.
겨우 있다는 게 성대모사입니다. 정치인의 목소리를 빌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목소리만 빌려오지 정치를 끌어오지는 못합니다. 정치인의 유명세를 빌리기만 할 뿐 정치행각을 도마 위에 올려놓지는 못합니다(이에 ‘근접’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아직 ‘도달’했다고는 볼 수 없기에 여기선 얘기하지 않으렵니다).
그 연유는 모두가 다 압니다. 사이버 모욕죄를 만들려는 참입니다. 정치인 패러디 포스터를 만든 게 정치문제화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현실에서 살아있는 정치인을, 그것도 아주 힘이 센 정치인을 대놓고 조롱할 만큼 간이 부은 코미디언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한 사진을 감상해도 실명을 박아 보도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지 않습니까.
4.
흔히 하는 수다가 있습니다.
“뻔하지, 정치 자체가 코미디잖아.”
세간의 이런 인식을, 정치의 이런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YTN의 ‘돌발영상’이었습니다.
‘돌발영상’엔 이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근엄한 표정으로 하나마나한 얘기를 읊조리는 정치인의 모습, 핏대 세우며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정치인의 모습 뒤에 감춰진 다른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딴짓하고 헛소리하고 허풍떨고 윽박지르는 정치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돌발영상’을 볼 수 없습니다. ‘돌발영상’은 지금 방송되지 않고 있습니다.
5.
갈증을 달랠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적인 풍자놀이가 있었습니다. ‘○○○시리즈’가 있었고 ‘△△△고스톱’이 있었습니다. 대놓고 조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비껴나 풍자하는 데에는 그런대로 쓸 만한 ‘거리의 코미디’가 있었습니다.
다시 발흥할지 모릅니다. 이 ‘거리의 코미디’가 되살아날지 모릅니다. 선술집의 소주잔 사이에서, 안방의 ‘국방색’ 담요 위에서 활짝 피어날지 모릅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동서고금이 증명합니다. 풍자와 조롱은 민초의 스포츠입니다. 힘 센 자, 가진 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건 억눌린 서민들의 카타르시스 해소법입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권력이 행사되던 시절에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버 공간마저 갇히려는 형국이라 특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곤거릴 대나무 숲은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겁니다.
PS. 뉴스를 보다 보니까 이게 눈에 띄네요. CBS 심야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맨이 그랬답니다. “매주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 코너를 만들어 부시의 실수를 비꼬았는데 이젠 소재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답니다.
몰랐습니다. 미국에 대통령 라디오연설이 있는 건 알았지만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이 있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도 만들었습니다. 미국을 따라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만들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은 어느 곳에서도 만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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