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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쌀·비료 지원 문제에 '인도적 상호주의'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가 전한 내용이다.

생뚱맞다. 인도주의와 상호주의가 짝을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은 '인도적 살인'에 버금갈 형용모순이다.

인도주의가 뭔가? 인종·국적·종교를 불문하고 사회적인 약자와 곤궁한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행위다. 상호주의는 뭔가? 받은 만큼 주는 실리적인 행위다. 짝을 이룰 수가 없다. 인도주의는 무조건적인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다. 상호주의는 이익을 추구하는 상거래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다.

눈 아프게 사전 뒤적일 필요 없다. 상징적인 예가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고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미국조차 매년 식량을 북한에 보낸다. 인도주의에 따른 조치다.

이해 못 할 건 없다. 인수위 관계자가 강조하고자 한 건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국군포로 귀환이다. 우리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과제다. 이 과제 해결을 다짐하는 걸 뭐라 탓할 순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인도주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인도주의를 저당 잡히는 게 온당한 것인지가 문제다.

개념에 매달려 속 빈 논의를 하는 게 아니다. 현실도 그렇다. 쌀·비료 지원문제는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이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직후 부산에서 개최된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쌀·비료 지원 유보를 통보하자 북한은 짐을 싸서 돌아가 버렸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일괄 타결을 보지 못했다.

성격이 다르다는 게 걸림돌이다. 우리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인도주의 문제로 보지만 북한은 체제 문제로 간주한다. 자진 월북자는 있어도 납치된 사람은 없다는 게 북한의 억지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북한은 국제범죄집단이 되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두고 북한과 일본이 수년째 평행선 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게 방증사례다.

북한에 '쌀·비료 줄게 납북자·국군포로 다오'라고 하는 건 실효성이 없다. 체제 존속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북한에게 그것은 도발이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라는 데 이견은 없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그리고 이산가족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갈수록 고령이 되는 그들이다.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상봉'을 넘어 '동거'로, '생사 확인'을 넘어 '귀환'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상봉'과 '생사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완전한 해결을 위한 조건은 성숙돼 있지 않다. 북핵 문제가 풀리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되고, 북한 스스로 체제 존속 우려를 씻어내기 전에 완전한 해결을 기대하긴 어렵다.

지금은 예열 단계다. 어쩔 수 없이 햇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의 박진 외교통일안보위 간사는 "햇볕정책은 결국 실패한 정책"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인도적 상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현실이 그렇고 원칙이 그렇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