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아본 일이 있으신지. '무명씨 이야기' 행운의 세븐, 일곱 번째 주인공은 올해 쉰둘의 노총각 김정봉 씨다. 몸무게 152kg, 허리둘레 52인치, 키 177.5cm. 수치만 들어도 대충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상황이 현재 어떠한지를.
최근 <조선일보>는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저소득층의 비만문제'를 다룬 바 있다. 전국 1만2천여 가구의 국민건강영양조사(2005) 결과 월 100만원 이하 가구소득 여성의 비만율은 35.4%. 이 계층의 여성 3명 가운데 1명은 비만이라는 연구결과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월 100만원 이하 가구소득 가정의 소아 비만율 또한 11.2%로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적 현상일까. 그건 아니다. 미국 LA 시의회는 지난 7월 "앞으로 1년간 남부 LA지역에서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점의 개업을 완전 금지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칼로리는 높고 영양가는 낮아 '비만의 원인'이 됐던 패스트푸드의 섭취를 최대한 막겠다는 게 시의원들의 의지였다.
실제 이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의 비만과 패스트푸드에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미국언론들은 보도한 바 있다. 외신에 따르면 뉴욕시도 모든 식당메뉴에 음식 칼로리 의무표시제를 도입하는 등 그야말로 미국은 '비만과의 전쟁' 중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정부는 지난 4월부터 40~74세 근로자 및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 1회 허리둘레를 측정하고, 기준치(남자 33.5인치, 여자 35.4인치)를 넘는 이들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관리를 받게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6개월 후에도 허리둘레가 줄지 않은 사람은 재교육을 받아야 하고 해당 기업에게는 직원의 허리둘레 관리 책임을 물어 벌과금까지 물리고 있다.
세계 비만인구 3억명...'슈퍼 사이즈 미'는 더 이상 남의 얘기 아니다
우리나라 비만 인구도 해마다 40만명 이상 늘어나, 비만 전단계인 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인 과체중 성인인구는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섰다. '슈퍼 사이즈 미'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오늘 만나 얘기를 들어볼 김정봉 씨도 같은 사연을 안고 있다.
얼굴은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다. 앞머리까지 뒤로 넘겨 고무줄로 묶어 올린 머리카락은 엷은 갈색이었다. 지난 13일,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기자와 만난 김정봉 씨는 살면서 겪었던 '슬픈 비만일화'들을 툭툭 털어놓았다.
그는 서울 후암동이 고향이다. 어릴 땐 몸이 너무 약해서 어른들이 '저거 커서 사람 구실 하겠나' 소리를 하는 걸 많이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비만 오면 학교에 결석했다. 고등학교 때는 약간 통통한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인 스물, 스물하나 무렵 그는 급격히 살이 쪘다. 하루 6끼씩 밥을 먹기도 했다.
스물하나 군 입대를 앞둔 시점에 그는 92kg이었다. 스물 둘엔 94kg, 스물 셋엔 98kg. 솔직히 군에 안 가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3급을종 '방위' 판정을 받았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후암동엔 같은 처지의 또래들이 무려 35명이나 됐단다.
어른들은 "방위라도 군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고 했지만, 솔직히 김씨는 "부모님께서 돈을 좀 주고라도 군대에서 빼주지"했단다. 근 100kg에 육박한 상태로 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몸에 맞는 군복이 없어 고생깨나 했단다. 사복 입고 훈련소를 돌아다닐 수 없어 내무반에서 보름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특별한 것 없이 있으니 훈련소에서 '나가 옷 맞춰 입고오라'고 하더군요. 이태원에 가서 미군 군복 늘려 입고 와서 훈련받았지요."
"살을 빼주마? 그건 선임병들의 놀림과 괴롭힘이었다"
선임병들의 놀림과 괴롭힘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살을 빼주마'고 들러붙은 선임병들은 날마다 모래주머니를 이고 선착순 집합을 시켰다. 김씨만 시킨다면야 그나마 나았겠지만 늘 단체기합이었다. 함께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고된 훈련은 날마다 계속됐다.
하루는 물을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다 대대장 차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그 앞에서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대대장이 "애 살 빼주랬지, 애 죽이라고 했느냐"고 야단을 쳐 그 뒤로 '말도 안 되는 살빼기 선착순' 훈련은 없어졌다고 했다.
방위에서 소집 해제된 김씨는 공업고등학교 때 배운 용접기술로 취직을 했다. 큰아버지 회사인 태진철강 등을 다녔다. 젊은 나이에는 해외경험도 쌓아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로 80년대 한창 '중동 붐'이 일 때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기도 했었다.
"시험에선 붙는데 면접에서 자꾸 떨어져요.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했지요. 83년 봄 극동건설에 시험 봤었는데 면접에서 또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따졌죠. 답은 역시 비만이 문제였어요. 건강 때문이라고 했지만 뜨거운 사막에서 이 덩치로 견딜 수 있겠냐, 혹시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해서 자꾸 낙마시켰던 거예요."
그는 혈압도 정상, 당뇨도 없다, 등등의 이유를 걸고 취업에 하자 없음을 계속 입증했다. 결국 그는 83년 봄부터 1년간 사막에서 일했다. 84년 아버지의 부음 소식만 없었다면 더 일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도 그의 비만은 화젯거리였다.
"3개월도 못 버틴다, 6개월도 못 버틴다, 등등 저를 두고 사원들끼리 내기를 했더군요. 더운 사막에서 그 덩치로 어떻게 견디겠냐 이거죠. 결국 1년은 넘길 것이라는 현장소장이 내기에서 이겨 돈을 다 땄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적지 않은 돈이 내기에 걸렸던 걸로 아는데, 나중에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죠."
그 뒤로는 취직이 잘 안 됐다. 또 비만이 이유였다. 하는 수 없이 일용직 용접 일을 전전했다. 10년간 간헐적으로 일용직으로 일했더니 살은 더 쪘다. 생활비를 위한 카드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5천만원의 빚에 허덕이던 그는 2006년 11월 파산선고 끝에 면책 받았다.
10년 백수, 카드빚 5천만원, 그리고 비만
2002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살 빼는 게 소원이어서 그런 일도 생긴 것 같아요. 우연히 서울지하철 3호선 교대역을 지나는데 한 사람이 절 너무 반가워하는 거예요. 알고보니 다단계 다이어트식품회사 직원이었지요. 먹으면 살이 빠진다길래 3개월간 충북 옥천에 있는 그 회사 수련원에 기거하면서 30kg을 뺀 일도 있었어요. 친구가 와보고는 '너 죽는다'며 절 끌고 갔죠."
살은 빠졌지만 건강상태는 만산창이였다. 병원에서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모든 면역체계가 깨졌다고 했다. 그는 친구가 사온 라면 한 박스를 먹고 급기야 130kg의 몸무게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그는 몇 차례 '이 약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다단계 다이어트식품회사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간 안 먹어본 다이어트식품이 없지만 그는 몸무게를 줄여본 적이 없다며 혀를 찼다.
2003년, 135kg의 몸무게가 됐을 때 그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그전까지는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치료가 필요한 단계라고 인식한 것이다. 병원의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약가 문제가 컸다.
당시 김씨를 치료했던 오상우 교수는 "비만도 다른 중증질환처럼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약들이 많다"며 "대개의 비만환자들은 고가의 약과 운동치료 등을 병행해야 하는데 사정상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오 교수는 "굶고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는 생각은 금물"이라며 "체계적인 운동치료와 비만관리, 식이요법, 약물치료 등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그는 일산 백병원에서 연구차 실시하는 '싱가포르 비만연구 임상실험'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상에서 탈락했다. 살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좌절되면서 기대도 꺾였다. 그 뒤로는 '그냥' 살았다. 병원에도 가지 않았고, 몸무게는 어느덧 152kg으로 늘어났다.
"한 끼에 공기밥 6개까지 세면서 먹어본 일이 있고. 삼겹살은 1근. 막걸리는 1말 반, 고량주는 19병, 맥주는 3만CC. 한번은 작은어머니와 금식기도 1주일 다녀온 뒤에 산에서 내려오면서 배가 고파 순대국 한 그릇, 설렁탕 한 그릇, 닭 한 마리, 집에서 끓여놓은 죽 한 솥까지 순차적으로 한나절에 먹은 일이 있어요. 그래도 배가 안 불렀으니... 저는 스트레스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 받으면 더 먹게 되거든요."
지금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끼에 밥 200g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비만 때문에 퇴행성 관절염이 왔고, 당뇨도 약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높아져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지만 여전히 늘어만 가는 몸무게를 볼 때마다 늘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고 했다.
연애에 관한 추억을 묻다
김씨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연애에 관한 추억'을 물었다.
스물다섯, 한창 예민하던 시기에 '비만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15주간 누워있으면서 병원에서 들은 얘기는 '내분비계의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속 시원한 답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도 그 시절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은 무산됐다. 그 뒤로는 연애가 잘 안 됐다. 내 몸 추스르기 어려운데 결혼은 무슨, 그런 생각도 했다. 선은 여러 번 봤지만 뜻대로 이뤄진 일은 없었다. 지금도 싱글이다. 그러나 결혼에 큰 뜻을 두지는 않는단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지, 한다.
살면서 비만 때문에 불쾌했거나 싫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는 많다고 했다. 물이 빠져도 둥둥 떠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비만이 좋은 건 단 한 개도 없다고 했다.
가장 싫은 건, 남의 시선이라고 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뒤통수가 따가운 게 싫다고 했다.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태워주면서 그만 태워주지 않을 때도 화가 난다고 했다. 한번은 "저 사람 태우면 내 차 빵꾸 난다"고 해서 친구들이 운전자를 실컷 패준 일화도 있다고 했다.
덩치 큰 것 다 알고 선 보러 나왔으면서도 다방에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머!" 하고 도망치는 여자가 싫다고 했다. 찜질방에 맞는 옷이 없어 늘 옷을 싸갖고 다녀야 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이 너무 비좁은 것도 싫다고 했다.
2006년 파산 끝에 친척의 소개로 경기도 안산의 한 고등학교 경비로 일하며 살게 된 김정봉 씨. 그는 매월 12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이 돈으로 노모와 함께 산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다. 살을 빼야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비만치료를 위한 고가의 약값과 운동치료 비용을 대기 힘들다. 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살을 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양복 한 벌 맞추고 싶어요. 살이 닿으면 천이 금세 헤지거든요. 옷도 실컷 사보고 싶고, 목욕탕도 맘껏 가보고 싶고."
김정봉 씨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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