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충북 옥천의 한 화학섬유공장에서 불이 났다. 당시 옥천 119안전센터에 접수된 화재지령을 받고 출동한 소방관은 4명. 이들은 모두 화재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현장으로 떠났다.
모든 사고현장에서는 인명구조가 최우선이라고 훈련받은 소방관들은 일단 진입 가능한 현장이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혹여 살아 있을지 모르는 생명을 끝까지 구해내는 것이 소방관들의 첫 번째 임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때 개인의 안위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다.
화재진압을 시작한 지 10여분이 지났을까. 물을 타고 기름이 올라왔다. 삽시간에 불은 소방관들의 온몸으로 옮겨 붙었다. 휘발성이 강한 란도 오일. 대개 자동차 용도로 쓰이는 이 기름이 섬유공장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던 거다. 예측불가의 상황이 터진 셈이다.
이 사고현장에서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은 소방관 임은재(41)씨. 그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서울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현장에서 희생된 3명의 은평소방서 소방관 영결식이 눈물 속에서 진행되던 지난 22일 오후, 그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칠흑 같이 어둡고 내부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진입해야 하니까 솔직히 불안하지요. (웃음) 그래도 그 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 꼭 확인해야죠. 그런데, 아마 불을 보면 누구든 무아지경에 빠질 거예요. 다 끝나고 나면, 나중에야 위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불 속에 들어가면 모든 소방관들은 흩어져 진압을 시작한단다. 50분짜리 공기를 주입하고 화마와 싸우게 되는데 대개 30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그만큼 불 속에서는 산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50분이 다가오면 자체 경고음이 나오지만 아비규환 속에서 일단 빠져 나와야 하는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구조현장에서 산소가 떨어지면 소방관도 죽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확한 사고원인이 파악돼야 알 수 있겠지만 대조동 나이트클럽 사고현장도 예측불가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대개 양식 철골구조, 조립식 지붕은 열에 의해 녹지 일시적으로 붕괴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나이트클럽엔 커다란 조명이 천정에 붙어 있잖아요. 아마도 그 무거운 조명과 지붕이 무너져 내린 게 아닌가... 이 또한 예측불허의 상황이었겠지요."
임 소방관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력부족, 처우개선, 예산배정, 소방방재청의 독립관청화 등등 소방관이 사고로 목숨을 잃을 때마다 언론은 시끄럽게 대안을 말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람 죽은 다음에 무슨 소용이 있냐고 개탄했다. 죽지 않고, 최대한 희생을 줄이면서 구조할 방법적 대안은 없겠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임 소방관은 벌써 13년째 나 아니면 내 동료가 언제든 화마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남 같지 않은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며 웃었다. 또 다른 11년차 소방관의 생각도 비슷했다.
"매뉴얼대로? 현장에선 잘 안 돼죠"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밝힌 그는 소방관이 왜 자꾸 죽어나는지 그 얘기를 쓰라고 했다. 현장 안전관리자가 각 소방서마다 정해져 있지만 책임자는 현장에 안 나온다고 했다. 소방관의 출동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담당자를 정해서 대원들의 희생 없이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난사고와 산악사고는 체력과 관계가 있어요. 체력소모가 많거든요. 그렇지만 화재사고는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사건도 지붕 붕괴위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죠.
붕괴위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무조건 들어가지 않고 일단 진입을 차단시킨 상태에서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붕괴위험이 있는 곳인지 아닌지 판단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원들이 무작정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게 문제 같아요. 소방관 안전에 대한 종합판단 없이 '무대포 식' 진압작전이 반복되는 게 문제점이라고 봐요."
불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건물구조 상의 위험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는데, 실제 잘 안 된다고 했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일단 불을 보면 막무가내로 진입하게 된다는 거다. 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수칙도 있고, 화재매뉴얼도 있고, 다 있어요.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잘 안 지켜진다는 게 문제지요. 화재현장은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어요. 따라서 한번 짜여진 매뉴얼을 매번 똑같이 적용할 수 없지요. 또 현장에서는 매뉴얼대로 잘 안 돼요. 사실 소방관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전제 아래 인명구조 활동을 벌였는데, 정작 그 안에 사람은 없고 건물구조와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 소방관만 희생됐다면 그 작전은 실패한 작전 아니냐고 되물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최근 6년간 40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2003년부터 매년 7명, 8명, 6명, 7명씩 죽어나갔다. 이 중 15명은 화재진압 당시 사고로 순직했다. 부상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2003년 367명이 공무상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매년 7~8명의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는 격이다. 이 고귀한 생명들이 '실패한 작전'으로 희생된 것이라면 누가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질 것인가.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사진= 20일 새벽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 3명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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