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당 386 국회의원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총선에서 살아돌아온 이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심판이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레드 카드가 나온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보수 언론이 놓치지 않습니다. 이들의 몰락에 '조사'를 바칩니다. 애도나 안타까움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조문에 참기름을 바른 듯합니다.
'사필귀정'이라고 합니다. 싸가지 없는 언사에 좌파 정책을 주도한 데 대한 심판이었다고 판정합니다.
2.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의 여부를 떠나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386은 좌파 정책을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죠. 자기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기존 정치에 휩쓸리면서 자리 보존하는데 골몰했습니다. 이게 몰락의 이유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 그들은 거수기로 전락했습니다. 어떤 386의원은 의원직을 건다고 큰소리 쳤다가 며칠 뒤에 입을 씻었습니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될 때 386은 없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인 건 475 의원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궤멸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386의원은 호남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선창했습니다.
손학규 대표를 옹립한 이들도 수도권 386입니다. 한나라당 출신으로 민주당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배지를 사수하려면 대중성 있는 사람이 나서 한 표라도 더 긁어모아야 한다며 옹립을 강행했습니다.
이런 족적을 남긴 386을 좌파 정책의 주모자로 몰아가는 건 과한 처사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대평가'입니다.
3.
선행 비판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이나 됐다고, 세상물정을 얼마나 깨쳤다고 벌써 금배지를 다느냐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생운동 경력을 팔아먹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나온 얘기는 '국회에 들어가서 잘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결과가 과정을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16대 총선 때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영입된 몇몇 386이 17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이어서 수십 명의 386이 탄핵 역풍을 타고 국회에 입성했지만 뭉치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좌장 또는 보스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시류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한나라당 소장파가 '미래연대' '수요모임'을 만들어 당내 소금 역할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2006년 지방선거를 끝으로 해체된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386도 어느새 흔적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이 해체되기 훨씬 전에 그랬습니다.
4.
'과대 해석'일지 모릅니다. 현실 정치의 복잡다단한 요소를 고려하지 못하는 단순 평가일지 모릅니다.
'도매금 비판'일지도 모릅니다. 수십 명의 386의원을 한 두름으로 엮어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일방적 평가일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을 한 386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 '진보의 가치에 방점을 너무 찍은 게' 대선과 총선의 패인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원인은 '진보 과잉' 때문이 아니라 '말의 과잉' 때문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겉만 번지르르 했지 실천한 건 별로 없었다고, 이런 모습이 중구난방으로 비쳐지면서 불신을 자초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한 가운데에 386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개혁성을 추동하고 담보하는 '세력'이 되기보다는 선배 의원과 어울리며 인맥 쌓기에 골몰하고 관료집단의 세치 혀와 두툼한 보고서에 휘둘린 '개인' 386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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