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기업이 있죠? 1등 기업이라고 하는…. 이 기업에서 제작한 CF에 '훈이'라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반 친구가 시험에서 한 문제 틀렸다고 통곡하는데 5개나 틀린 '훈이'는 아주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답안지를 내밀면서 말합니다.
"나 잘했지?"
그 아들에 그 엄마인가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느긋한 건 1등이네."
저희 집에 '훈이'와 판박이인 놈이 산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죠.
어느 날인가 받아쓰기를 40점 받아왔더군요. 빨간 색연필로 직직 그은 사선의 행렬을 보니까 은근히 부아가 치밀더군요.
"야, 이게 뭐야?"
근데 이 놈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20점 받은 애도 있어."
글로 전달하려니까 이 놈의 억양을 표현할 수 없네요. 실제와 비슷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20점 받은 애도 있어↗" 말꼬리를 말아올리는 게 명백한 항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이번엔 60점을 받아왔더군요. 또 한 마디 했습니다.
"좀 제대로 할 수 없냐?"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되받아 치더군요..
"100점 받은 애가 두 명 밖에 없었어↗. 이번 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다고↗"
수양의 차이일까요? '훈이' 엄마는 느긋하게 받아들였지만 저는 눈을 부라렸죠. 그 때는 그랬습니다.
몇 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생각합니다.
'이 놈은 어찌 살아야 하나.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2.
대통령직 인수위가 교육제도 개편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자율화한다고 합니다. 특목고 인가 권한도 시·도 교육청에 완전히 넘긴다고 합니다.
우려가 쏟아집니다. 교육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걱정을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대학 입시가 자율화 되면 고교 등급제가 적용될 것이고 중학생들은 목을 매겠지요. 이미 존재하는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여기에 이명박 당선자의 공언에 따라 속속 세워질 100개의 자율형 사립고(종류가 많으니까 ‘1급 고교’로 통칭하겠습니다)에 들어가기 위해 학원에 줄을 서겠지요.
근데 저는 다른 걱정이 먼저 듭니다. ‘1급 고교’가 몇 개 안 되던 시절과 백 수십 개가 들어설 앞날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차이일 겁니다.
‘1급 고교’에 가는 학생들은 '특별한' 애들이었습니다. 그 맞은편에 있는 학생들은 '평범한' 애들이었고요.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주위에서 '1급 고교'에 가는 애들은 가물에 콩 나듯 했으니까, 대다수 친구들은 자기와 똑같이 일반계 고교에 다녔으니까 '보통'은 될 수 있었습니다.
백 수십 개의 '1급 고교'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요? 달라질 겁니다. ‘평범’과 ‘보통’이 ‘열등’과 ‘부진’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우리 애들의 정서에 미칠 악영향이 걱정됩니다.
'특별'이란 개념엔 거리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것, 그래서 '너 잘났다'고 부러워하고 동경을 해도 '평범'한 절대 다수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이 ‘극소수’에서 ‘상대적 소수’로, ‘평범’이 ‘절대 다수’에서 ‘상대적 다수’로 바뀌면 정서가 달라집니다. '너 잘났다'는 정서가 '난 바보다'로 바뀝니다.
주위 친구 여럿이 '1급 고교'에 진학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겠죠. 감수성이 예민한 그 나이에 자괴감을 가득 안은 채….
두렵습니다. 자괴감이 원망으로 바뀔까 두렵습니다. 왜 아빠는 남들처럼 팍팍 밀어주지 못했냐고 대들까봐 겁이 납니다.
그 때가 되면 저도 바뀌겠죠. 받아쓰기 점수가 왜 40점이냐고 힐난하며 부라리던 눈을 내리깔겠죠. 저 역시 자괴감에 빠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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