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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머리 숙였습니다. 자신의 딸이 외교부 5급 계약직 특채에 응시한 걸 취소했다며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것이 특혜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헌데 왜일까요? 일이 바로잡혔는데도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유명환 장관 딸 특채는 빙산의 일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딸 특채가 취소됐다고 해서 물밑에 숨어있는 빙산의 거대한 몸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유명환 장관이 사과한 건 딸이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응시한 겁니다. 이른바 상피제(일정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 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는 전통)를 어긴 것을 사과한 겁니다.

그럼 어떨까요? 유명환 장관의 딸이 외교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 응시해 채용됐다면 어떨까요?

응당 화제 삼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마냥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를 축하하기에 앞서 축하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3.
2007년 자료가 있습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입니다. 이 명단을 보면 행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고교는 모두 대원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였습니다. 사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 역시 대원외고였습니다.

특별한 현상도, 유별난 사례도 아닙니다. 불가역적 흐름입니다. 2007년 기준으로 역대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를 보면 대원외고가 322명으로 441명의 경기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원외고가 경기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짧은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약진입니다. 이것이 흐름이고 추세입니다.

이런 흐름과 추세가 나타나는 요인은 경제력 때문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고,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아야 성적이 껑충 오르고, 성적이 올라야 특목고에 진학하고, 특목고에 진학해야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법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학자금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공부에 전념해야 고시를 1년이라도 더 빨리 통과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고시 공부하던 학생이 농사짓는 부모 보기 미안해 한강에 투신하고, 다른 고시생이 시골 사는 부모에게 손 벌리기 미안해 마사지 업소에 칼 들고 뛰어 들어갔다는 뉴스가 반증하는 법칙이죠.

유명환 장관의 딸도 이런 전형적인 경로를 밟았을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니까 외국어 능통자가 될 여건을 갖췄고,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으니까 학자금 걱정 않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응시자격을 얻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결과 이전에 출발점부터 달랐을지 모릅니다.

4.
바뀌는 건 없습니다. 사법고시 대신 로스쿨제를 도입해도, 행정고시 이름을 ‘5급 공채시험’으로 바꿔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습니다. 제도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어도 공부할 만한 사람, 공부할 여건이 되는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은 요지부동일 테니까요. 오히려 행정고시를 없애고 사법고시를 없애면 채용과정에서 '음서제'의 기운이 더 많이 스며들지 모릅니다.

바꾸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없애라고 할 수도 없수도 없습니다. 공시ㆍ공채 시스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거머쥐어야 하는 것은 공정 평가와 공정 선발뿐입니다. 굳이 하나 추가하자면 상피제를 들 수 있겠죠. 심하게 감질 나지만 우리 현실이 이렇습니다.

5.
중국에 ‘태자당’이 있습니다. 핵심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당ㆍ정ㆍ군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숫자가 대략 4천명쯤 된다고 합니다. 일본엔 ‘세습의원’이 있습니다. 부모 또는 조부모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들입니다.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 나선 ‘세습후보’가 32명, 이 중 당선된 사람이 18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중국의 ‘태자당’과는 경로가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ㆍ관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가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이 있었고, 어머니 ‘대타’로 비례대표가 된 여성 의원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위해야 할까요?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도, 일본도 비슷하니까 그러려니 생각해야 할까요? 유명환 장관 딸 소동 뒤끝에 서서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토씨'


1.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실화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밤 11시를 갓 넘긴 시간에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섰는데 사복형사 두 명이 다가와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더군요. 이유를 대기 전에는 못 내놓겠다며 버티기를 5분여, 결국 사복형사가 말하더군요. 며칠 전에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제 얼굴이 용의자 몽타주와 비슷하다고, 그래서 미행했다고.

2년 후. 직장 야유회를 끝내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남대문 시장 정류소에서 시청역 지하철로 향하던 중에 불심검문을 당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9번. 남대문에서 시청역까지의 그 짧은 거리에서 대략 1분 30초에 한 번꼴로 전경에 의해 통행이 제지당했습니다. 그 때 시위가 있었는데 행색이 시위 참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뒤 자진해서 거울 용도를 제한했습니다. 선한 인상을 갖고 있다는 나르시시즘을 과감히 버리고 거울은 눈곱이나 이에 낀 고춧가루 색출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7일 통과시킨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꼭 저를 겨냥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불심검문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불심검문 시 경찰이 검문대상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하고, 신분증이 없을 경우 지문 채취나 다른 연고자를 통해 신분을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거동 의심자에 대한 소지품 검사 범위도 확대해 ‘흉기’로 한정됐던 검사 대상에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추가했습니다.

시민이 이같은 불심검문을 거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지문 검사 외에는 거부할 수 없도록 했거든요. 

3.
어쩌겠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안보와 치안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싫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자위책을 찾아봅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여 거리를 걸을 때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일도, 손가락에 잉크 묻혀 지문 찍는 일도 피할 수 있겠죠.

가방은 투명가방으로 바꿔야 합니다. 경찰관이 소지품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먼저 자진 공개하는 겁니다.

등산이나 낚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습니다. 레저용 칼이나 지팡이, 낚싯대 거치대를 지참했다가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거든요.

4.
헌데 어쩌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같이 인상이 ‘더러운’ 사람들은 소용없습니다. 그래 봤자 거동 의심자 대열에서 열외 처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집회 장소를 지나다가 채증이라도 되는 날엔 소환장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승용차를 애용하자고, 동네 슈퍼에 담배를 사러 갈 때도 승용차를 몰고 나가 불심검문을 당할 여지를 아예 없애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소용없습니다. 검문 대상에 차량 탑승자도 포함되거든요.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하는 겁니다. ‘더러운’ 인상을 선한 인상으로 바꿔 ‘모범시민’으로 대접받는 겁니다. 적잖은 돈이 들겠지만 길거리에서 수없이 당할 불쾌감과 모멸감을 생각하면 적금 들어 수술비용 대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주위에서 지인들이 그러네요. ‘너는 견적이 아예 안 나온다’고.

전 어떡해야 하나요?

Posted by '토씨'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그리고 성토합니다. MBC ‘PD수첩’이 ‘검사와 스폰서’를 내보낸 다음날 하루에만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른바 ‘스폰서 검사’를 성토하는 글을 ‘아고라’에 올렸고, 수를 헤아리기 힘든 많은 사람들이 검찰 홈페이지를 다운시켰습니다.

새삼 묻습니다. 왜일까요? 왜 사람들은 ‘스폰서 검사’에 분노하는 걸까요?

새삼 묻는 이유가 있습니다.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꼴 저 꼴 다 봤습니다. 검찰에 관해서는 별꼴을 다 봤습니다.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순혈주의’를 봤고, 노무현ㆍ한명숙 수사를 통해 ‘정치 검찰’을 봤고, ‘삼성 X파일’을 통해 ‘떡검’을 봤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를 통해 ‘스폰서 검사’를 봤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PD수첩’에 의해 폭로된 ‘스폰서 검사’의 실상은 익히 보아온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다른 걸 찾자면 ‘떡검’에 ‘색검’ 사례가 추가됐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면서 ‘썩소’ 한 번 날리고 마는 게 아니라 대놓고 성토합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반복되는 자극에 둔감해지는 게 생리법칙인데 왜 사람들은 이런 생리법칙을 따르지 않는 걸까요?

개인적으로 한 마디 말에 주목합니다. 어느 지검장이 ‘PD수첩’의 취재를 받다가 내뱉었다는 막말 한 마디입니다

“네가 뭔데?”

이 막말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검장의 고압적인 자세가 국민 감정에 불을 질렀다고 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 또한 지금 검사를 향해 ‘네가 뭔데?’를 묻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고압적인 자세가 아니라 진중한 자세로, 무시하면서가 아니라 고민하면서 이렇게 묻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단신뉴스가 하나 나온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시민과 공무원 13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의식 실태조사 결과를 전하는 뉴스였습니다.

결과가 이율배반적이더군요.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응답률이 25.6%, ‘내가 법의 주인이다’는 응답률이 9.1%에 불과했는데도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에 도움을 청할 것’이라는 응답률이 71.1%에 달했습니다.

이 모순된 수치가 모든 걸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검사를 향해 던지는 ‘네가 뭔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법을 불신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법 집행과 적용을 불신합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먹과 권총에 호소하는 서부개척시대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하지만 기대합니다. 검사를 불신하면서도 검사에 의지합니다. 검사를 향해 ‘네가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마음에 양가의 감정을 담습니다. 아주 위태롭게, 아주 처절하게 양가성을 유지합니다.

‘스폰서 검사’는 이 위태로운 양가성을 흔든 것인지 모릅니다. ‘역시나’를 예감하면서도 ‘혹시나’를 버리지 못하는 절절한 마음에 분탕질을 한 것인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폰서 검사’에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릅니다. 마지막 지푸라기마저 빼앗겼다는 느낌 때문일지 모릅니다.

부기 - 이렇게 보니 ‘스폰서’는 ‘불신’의 화신 같습니다. 일말의 기대라도 갖고 있었다면, 불신하면서도 일말의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비싼 돈 들여 술 사주고, ‘2차’ 보내고, 택시 잡아주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스폰서’는 검사에 대한 양가성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사진=검찰 로고 ⓒ검찰청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1.
가끔 농담처럼 내뱉습니다. ‘일찍 학교에 다니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내뱉곤 합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그 덕에 용케 대학에 갔습니다. 과외는 고사하고 학원 문턱 한 번 넘은 적 없지만 ‘성문종합영어’와 ‘해법수학’에 기대어 용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 세대는 취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데모를 하다가 ‘별’을 다는 경우가 아니면 ‘웬만한’ 대학을 나온 사람은 ‘웬만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반영이었을까요? 제 또래는 ‘일자리’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득권’을 고민하던 세대입니다.

그래서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해법수학’이 아니라 학원에서 대입 해법을 찾는 후배 세대, 기득권은 고사하고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후배 세대를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그 후배 세대에 제 자식도 포함돼 있기에 정말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2.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 또한 남다르지 않을 거라고. 보아 하니 수재도 영재도 아닌 것 같기에 남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짐 삼아 읊조립니다. “굳이 대학에 목 매달 이유가 없다”고 떠듭니다.

‘공부의 신’이 보우하지 않는 한 굳이 대학 입학을 위해, 그리고 대학 수학을 위해 억만금을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고 떠듭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기술습득비와 창업자금으로 지원하는 게 낫다고 떠듭니다. 

나름대로 살펴보고 떠드는 겁니다. 직장이 ‘등용문’이 아니라 ‘스카이’의 ‘낙하장’이 된 현실, 용케 직장에 들어가 봤자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보면서 떠드는 겁니다. 제 자식이 사회에 진출하는 10여년 후가 되면 인구구조가 변하고 노동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전문직 시장은 1%의 소수가 독점하고 막노동 시장은 이주 노동자가 점유하는 반면 중간지대의 기술노동 시장은 선진국처럼 인력 공급이 달려 ‘공임’이 올라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떠드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생각도 다짐도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3.
그렇게 기술을 습득해봤자 ‘자립’할 여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반문에 말문이 막혀서만은 아닙니다. 돈이 된다 싶은 분야는 예외없이 대기업이 치고 들어오는 판에 ‘독립’할 여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지적에 말문이 막혀서만은 아닙니다.

한 곳만 응시할 수가 없습니다. 눈이 ‘객관 영역’을 응시하는 동안 자식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와 꽂힙니다. ‘왜 아빠의 판단과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했느냐’고 항변할 것 같습니다. ‘왜 나에게 동등한 공부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고 대들 것 같습니다. 나중에 커서 이렇게 대들까봐 지레 겁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교수 한 분을 떠올립니다. 본인은 물론 부인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교수는 당신의 자식들이 세례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는 나의 것”이라고, “나의 믿음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내 자식이 커서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한 희망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자식의 눈초리에 찍히고 대학 교수의 말에 눌려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 판단과 자식의 기회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눈치만 살핍니다. 의식화(?)를 감행해 볼까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어리니까’라고 변명하면서 또 다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몹니다.


4.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 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대학을 거부한 그가 20대 청년들에게 “정해진 몇 개의 직업이 꿈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보기>

죄스런 마음으로 경청합니다. 후배 세대에게 모노톤의 꿈만 강요하는 사회를 만든 선배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런 마음으로 김예슬 씨의 충고를 경청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정해진 몇 개의 직업” 만이 꿈은 아니라고 말할 용의가 있으면서도 “다른 길”을 언제 제시하고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트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제 자신을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모두가 코흘리개 아이들입니다. 언론에 등장한 천안함 실종자ㆍ순직자의 아이들은 일곱여덟 살, 많아야 이제 갓 중학생이 된 13살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7살배기 아이는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고, 8살배기 아이는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엄마의 간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3살 아이는 밥 해 줄 사람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가슴을 태우는 가족들입니다. 수백 명의 실종자ㆍ순직자의 가족들은 모두가 한 장병의 부모이자 아내이자 형제입니다. 이런 가족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긴장, 초조, 좌절, 허탈, 절망, 분노의 감정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도 변변한 심리 상담 한 번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또한 ‘순직’한 사람입니다. 천안함 수색작업을 위해 쌍끌이 배에 올랐다가 사고로 숨진 금양98호 선원 김종평 씨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누구보다 천안함 사고에 애태우던 시민입니다. 그랬던 그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 한 귀퉁이에 마련된 빈소엔 조화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조문객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실종자ㆍ순직자의 아이들 몇몇에겐 학교가 나서서 심리 상담을 추진하고 있고 친구가 사탕으로 위로를 대신합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겐 일반 의료지원을 하고 있고, 고 김종평 씨 빈소엔 총리와 정치인 몇몇이 조화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없습니다. 구난 시스템이 없고 지원시스템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극히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지원과 관심뿐입니다. 

교육 당국은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는데도 보호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습니다(이런 게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군 당국은 생존 장병들에겐 12명으로 구성된 정신건강 전문팀의 치료를 제공하면서도 숯덩이가 돼 가는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은 살피지 않습니다. 정관계 인사들은 고 한주호 준위 빈소는 줄지어 찾더니 고 김종평 씨 빈소엔 조화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구난과 지원은 물리적 개념만도 물질적 개념만도 아닙니다. 로프를 던지고 사다리를 올리는 것만이 구난이 아니고, 훈장을 수여하고 위로금을 주는 것만이 지원이 아닙니다. 그건 최소의 방책이지 최적의 대책은 아닙니다.

최적의 대책은 시스템입니다.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 ‘표면’에서만 연출하는 잠깐 동안의 몸짓이 아니라 ‘이면’까지 꼼꼼히 살피는 눈길이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상처를 달래는 외과 처방이 아니라 깊은 슬픔과 텅 빈 외로움을 끝까지 돌보는 내과처방이어야 합니다.

▲사진=천안함 실종자의 한 가족이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 마련된 임시 대기소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1.
그저께군요.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이 책 저 책에 침을 묻히다가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 모두 하늘을 향해 곧추 섰더군요.

서점 문을 열고 나와 엎어지면 코 닿을 피맛골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재개발 때문에 모두 헐리고 세 집 밖에 남지 않은 그 곳. 풍경은 썰렁했지만 맛은 그대로였습니다.

순두부찌게를 시켜놓고 물대신 나온 숭늉을 후후 불어 마시는데 키가 190cm쯤 돼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 꾸부정한 자세로 들어와 어눌한 말투로 음식을 시키더군요. “제유포쿰!”

순두부를 밥에 비비며 훔쳐본 그 사람의 손놀림은 능숙했습니다. 한두 번 먹는 게 아닌 듯 제육볶음이 담긴 접시에 공기밥을 붓더니 석석 비벼 맛있게 먹더군요. 살짝 웃었습니다. 그에겐 매웠을 법한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겨웠고, 누렇게 색 바래고 여기저기 볼펜똥이 묻은 벽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친숙했습니다.

2.
오늘 신문을 보니 피맛골에 얽힌 기사가 실렸더군요.

‘청일집.’ 청진동에서 제일 먼저 생겼다고 해서 간판을 ‘청일집’으로 올렸다는 그 음식점이 65년의 역사를 접고 이사를 간다는 뉴스였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 수없이 늘어섰던 음식점들이 그러했듯 ‘청일집’ 또한 재개발의 뒤켠으로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청일집’과 함께 막걸리 시절의 추억도 사라진다는 뉴스였습니다.

3.
추억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피맛골이 사라짐과 동시에 대포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탁배기 한 사발에 시대에 대한 불만과 살림살이의 강퍅함을 털던 서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디자인 서울’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역사와 생활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서울에 와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 밖에 본 기억이 없다고 투덜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대로 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잘 정돈된 전통가옥만이 아니라 보통 한국인의 보통 생활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재산권 행사를 어찌 막느냐는 항변과, 다른 종로통에 남아있는 피맛골은 보존하지 않느냐는 핀잔에 정색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완전히 털어낼 수 없습니다. 교보문고 옆 피맛골만의 고유한 생선 굽는 냄새가 있었거든요.

새삼 궁금해지네요. ‘제유포쿰’을 맛있게 먹던 그 외국인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요?

▲캡쳐=‘청일집’ 철거 소식을 전한 ‘한겨레’

Posted by '토씨'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아들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군요. 

‘아빠, 편지 봤어?’

느닷없이 웬 편지 타령인가 싶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무슨 편진데?’
‘…아니, 관리비 고지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뭐 반가운 편지라고 이른 아침부터 호들갑인가 싶어 그냥 “알았어”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곤 까맣게 잊었죠.

집에 들어가니 침대 옆 탁자에 문제의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봉투가 놓여있더군요. 달갑지 않았습니다. 한파로 끌어올린 보일러 온도만큼 관리비 또한 늘어났을 게 분명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관리비는 전 달에 비해 8만원 넘게 더 나왔더군요.

한숨 크게 내쉬고 봉투를 집어던지려던 순간 흰 종이가 끼어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포장이사업체의 천연색 홍보전단과는 다른 순백의 종이였습니다.

‘아빠에게.
아빠, 나 때문에 화나거나 짜증날 때가 자주 있지? 비록 작은 돈이지만 받아주고 앞으로 오래오래 살자.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의 자랑스런 장남, ○○올림’

순백의 종이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렁이가 기어가듯 한 글자 한 글자가 제각각 누워있었습니다.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반강제로 쓴 의례적인 편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편지를,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받은 게 처음이라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밖에 안 된 놈이 아빠에게 돈을 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환갑 넘은 아버지와 서른 넘은 아들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니까요. 

뜨악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봉투를 다시 뒤졌습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10원짜리 동전 하나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아들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무슨 돈인데?”
“응, 만원.”
“만원? 네가 돈이 어딨어?”
“용돈 아껴서 모은 거야.”
“그걸 왜 아빠에게 줘?”
“아빠 돈 버느라고 힘들잖아.”
“그래서 보태주려고?”
“응.”
“근데 왜 돈이 없냐?”
“심부름하느라고 썼어.”
“심부름? 무슨 심부름?”
“할머니가 뭐 사오라고 하셨는데 돈 꺼내기 귀찮다고 일단 그 돈으로 쓰래.”
“그래서?”
“나중에 받았어.”
“그럼 왜 아빠한테 안 줘?”
“히히, 깜빡했어.”

저도 웃고 아들도 웃었습니다. 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아들은 뒷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그리곤 잠깐 동안의 정적…. 여전히 미소를 흘리는 아빠를 남겨둔 채 방을 나가던 아들이 돌아서며 한 마디 하더군요.

“아빠, 선물 좀 잘 감춰.”
“왜?”
“△△이 봤잖아.”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이 장롱 속에 숨겨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했다고 밀고하는 아들이 양미간을 찌푸립니다. 천재라더니 조그만 선물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하냐는 투로 침대에 널브러진 아빠를 내려다봅니다.

벌써 다 컸나 봅니다. 아빠의 고충을 헤아리는 것도 그렇고, 같은 돈으로 아빠와 할머니의 환심을 동시에 사는 것도 그렇고, 생색은 다 내면서도 결국은 제 주머니로 돈을 집어넣는 것도 그렇고…. ‘원소스 멀티유스’의 비법에다가 봉이 김선달의 비기까지 벌써 깨우친 것 같습니다^^

팔불출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빠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아들은 정말 “자랑스런 장남”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