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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을 보내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쉽습니다.
하릴없이 또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2011년 한 해가 그리 어두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희망의 싹을 보았으니까요.
그런데도 마음이 무겁고 아쉬운 건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돋아난 희망의 싹을 함께 보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강단있는 반독재 투사였으면서도 마음은 여리디여렸던 ‘영원한 형님’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쉽습니다.
조금만 버텼으면, 조금만 건강했으면 함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도 다시 추슬러야겠지요.
고인이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두 번의 기회를 속절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뜨겁게 2012년을 맞아야 할 것 것 같습니다.
바쁘게 2012년을 누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고인을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부채의식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2012년을 점령하는 해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독자 여러분의 건투와 건승, 함께 하는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Posted by '토씨'


번개보다 빠른 게 세월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잠시 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흘렀네요. 건강상의 이유로 ‘이슈 분석’을 놓은 지 두 달이 흘렀고, 방송에서 하차한 지 열흘 가까이 흘렀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려 했는데 아예 드러누워 잠을 자버린 것 같습니다. 경주를 하다말고 그늘 밑에서 잠을 잔 토끼처럼…. 죄송합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다시 출발점에 서서 천천히, 그러나 착실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려 합니다.

새로 시작하면서 논란이 됐던 저의 방송 하차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이겠지만 사실  드릴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방송 하차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간 터에 저까지 말을 섞는 것은 면구스럽고 구차한 일입니다. 제가 입을 열어야만 내막이 밝혀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확성기를 집어들어야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가 아는 내막의 대강은 이미 공개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까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자기 변호, 또는 자기 정당화 밖에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하는 게 더 진실 될 수도 있겠죠. 저보다 앞서 가셨던 몇몇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의 방송 하차가 우리 언론, 우리 방송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일조를 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받아들이면 될 일입니다. 

더구나 방송 하차가 끝은 아닙니다. 단지 차에서 내렸을 뿐 여정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차가 없다면 자전거를 타면 되고, 자전거가 없다면 두 다리로 걸으면 됩니다. 중요한 건 빨리 내달리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니까요.

제 여정은 글쓰기입니다.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글에 담는 것입니다. 제 방송 하차 사유가 이것이라 해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방송 하차 사유가 이것이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여정을 차근히 밟을 것입니다. 나대지 않고 묵묵히,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한 걸음 한 걸음 놓을 것입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마음가짐으로 성실하게 글을 쓸 것입니다.

여러분의 질책과 격려 기대하면서 며칠 내로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토씨'


20년 전쯤의 일이네요. 자유기고가가 눈길을 끈 적이 있습니다. 특정 매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제 혼자 취재 하고 글 써서 기고하는 직업이 젊은이들 사이에 매력 있는 직종으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하나 둘 자유기고가 타이틀을 달면서 ‘연합회’ 비슷한 단체까지 생길 정도였죠.

하지만 저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반대했습니다. 후배들이 찾아와 자유기고가 전망을 조심스레 꺼낼 때마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외양,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양은 말 그대로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기고'는 '밥으로부터의 자유'를 제물 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기고가 아니라 속박된 하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입에 풀 칠 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여러 편의 글을 써야 했습니다. 매수가 많아 그만큼 원고료 총액이 큰 월간지에 하나를 쓰고, 매수는 많지 않지만 원고료 단가가 센 대기업 사보에 하나를 더 써야 겨우 최저생계비가 보장됐습니다. 하지만 월간지에도, 사보에도 자유는 없었습니다. 편집자의 일방적인 청탁만 있었죠. 발품 팔아야 하고, 취재하기 귀찮은 ‘꺼리’를 자유기고가의 몫으로 떠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애당초 성립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을 전문직종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필수요소, 즉 전문분야를 갈고닦을 여지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입에 풀 칠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관심 두는 분야, 자기가 잘 아는 분야와는 무관하게 매체 편집자가 원하는 글을 납품해야 했으니까요.

후배들은 미국의 기사 신디케이트를 운위하면서 전문 내공을 쌓은 다음에 글을 기고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저는 잘랐습니다. 그건 그 나라 얘기라고, 우리 매체가 지급하는 원고료가 얼마인지 둘러보라고 반문했습니다. 쓸 만한 글 한 편 팔면 두세 달 먹고살 원고료를 주는 나라와 마른수건 쥐어짜듯 원고료를 깎고 또 깎는 나라를 어찌 비교하냐고 되물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은 어느 순간 쏙 들어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IMF 위기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 구조조정 일순위로 사보를 정리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자유기고가가 비교적 손쉽게 짭짤한 원고료를 챙기던 통로가 바늘구멍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자유로운 글쓰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주변 후배들에게, 글쓰기 강좌를 듣는 수강생에게 자유로운 글쓰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매체환경과 정보환경이 바뀌었으니까 작심 하고 내공 쌓으면 기자와 ‘맞짱’ 뜰 정도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천에 널린 게 1인 미디어이고, 인터넷이 보장하는 게 빠르고 폭넓은 콘텐츠 유통이니까 글쓰기 전망을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표현 욕구가 분출하는 걸 확인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인’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기고’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떠벌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병행하라고 말합니다. 생활정치, 생활진보가 화두가 되는 요즘 아니냐고, 그러니까 자신의 삶터를 기반으로 사회적 화두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라고 말합니다. 정치권과 언론의 공담(空談)이 지겹지 않냐고, 그러니까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뽑아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프로 같은 아마추어가 되라고 말합니다.

압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인정합니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충분히 헤아립니다. 글은 자유로운 신분일 때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기에 주변의 시선과 삶터의 이해관계에 속박된 생활인이 사회적 화두가 될 만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엄청 어렵다는 걸 압니다. 프로 같은 아마추어는 결국 분열될 수밖에 없는 모델이란 걸 압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올인’을 떠들지 못하고, ‘자유’를 읊조리지 못하고, ‘프로’를 추켜세우지 못합니다. 글 쓰려는 욕망, 사회를 향해 표현하려는 열망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차마 장단 맞추지 못합니다. 그 끝이 무엇인지 대충, 아니 충분히 예감하기에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저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곤 ‘병행’ 뿐입니다. 표현 욕구를 끌어안으면서도 척박한 현실을 등질 수 있는 방책이라곤 오로지 ‘병행’ 밖에 생각해내지 못하기에 그냥 그렇게 읊조립니다.

어제와 오늘 두 개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전도유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밥과 김치를 달라는 말을 남기고 월세방에서 숨져갔다는 뉴스, 그리고 성인 10명 중 3.5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뉴스였습니다.

Posted by '토씨'


아마도 4~5년 전쯤부터였을 겁니다. 통성명을 할 때 학번을 대다가 그때부터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나는 7살에 학교 들어갔다’고….

속절없이 나이 먹는 게 억울해서였습니다. 남들보다 한 살이라도 적다고 자위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래도 얼굴 나이는 들어 보이나 봅니다. 삼사 년 나이 많은 선배도 저를 처음 보고 ‘선배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아~ ).

또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 섰습니다. 헌데 이번엔 억울하지도 아쉽지도 않습니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임계점’입니다. 액체와 기체의 상태를 분간하기 힘든 경계점 말입니다. 올 한 해는 그런 해였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꿈틀대는 시기였습니다. 단면은 ‘고착’이었지만 맥락은 ‘변화’였습니다.

6.2지방선거가 그 예입니다. 편향과 편중을 용납하지 않는 국민의 역동적인 저력이 발산된 사례입니다. 무상급식도 또 하나의 예입니다. 고정관념에 속박되지 않는 국민의 역동적인 사고가 투영된 사례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영원불변한 건 없으니까요. 그 어떤 존재, 그 어떤 의식도 흥망성쇠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임계점은 임계점일 뿐입니다. 추가로 열에너지를 가하지 않으면 액체는 완전히 기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액체 상태로 회귀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만 확인한 것으로 갈음하렵니다.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열에너지를 추가로 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내년 한 해를 열려고 합니다.

‘미디어토씨’를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바위처럼’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복된 내일을 여시기 바랍니다. 용기 내시고요.

Posted by '토씨'


종종 같은 뉴스를 접합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어머니, 생계난을 견디다 못해 어린 자식에게 약을 먹인 뒤 남은 약봉지를 자기 입에 털어 넣은 아버지에 관한 뉴스입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오죽하면 저랬을까 싶어 가슴 미어지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자식들이 뭔 죄를 졌다고 목숨을 끊나 싶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의 인생 결정권을 대리 행사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또 하나의 뉴스를 접했습니다. 12살짜리 장애 아들에게 기초생활보장 혜택이나 장애아동 부양 혜택이라도 주고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소식이었습니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일감이 끊겨 힘들어하다가 유서 한 장 남기고 아들 곁을 떠났다는 아버지 소식이었습니다.

다시 만감이 교차합니다.

12살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고아원으로 보내질까요? 아마도 고아원은 아닐 겁니다. 어머니가 살아 있으니까요. 그래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노동할 수 있다면, 벌이가 법적 요건을 초과한다면 아버지의 바람은 허망하게 스러질지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재는 게 무의미합니다. 아니, 호사가의 잔인한 관심인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든 안 되든 아버지를 떠나보낸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합니다. 일용직 아버지와 장애 아들 소식에서 우리 복지의 현주소를 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2살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고 해서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풍족한 물질적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가 벌이가 있다면 그만큼 지원비가 깎일 것이고, 어머니가 벌이가 없다면 입에 풀칠할 정도의 지원만 받을 겁니다. 수없이 보고 들었던 ‘감질 나는 복지’를 아들 또한 피해가기 어려울 겁니다.

막히네요. 이 지점에 오니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겁니다. 자식을 남겨놓고 떠난 아버지에게도, 자식을 품에 안고 뛰어내린 어머니에게도 그 독한 마음으로 살면 뭐든 못 하겠느냐고 말해야 할 겁니다. 이런 ‘개별적인’ 얘기 말고 ‘사회적인’ 얘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가 책임 지면 되지 않느냐고,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못하면 사회가 복지를 늘려 보살피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만입니다.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는 기만입니다. 사회가 책임 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 사회였다면 가족 동반자살도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동사무소에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메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Posted by '토씨'


1.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머리 숙였습니다. 자신의 딸이 외교부 5급 계약직 특채에 응시한 걸 취소했다며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것이 특혜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헌데 왜일까요? 일이 바로잡혔는데도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유명환 장관 딸 특채는 빙산의 일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딸 특채가 취소됐다고 해서 물밑에 숨어있는 빙산의 거대한 몸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유명환 장관이 사과한 건 딸이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응시한 겁니다. 이른바 상피제(일정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 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는 전통)를 어긴 것을 사과한 겁니다.

그럼 어떨까요? 유명환 장관의 딸이 외교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 응시해 채용됐다면 어떨까요?

응당 화제 삼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마냥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를 축하하기에 앞서 축하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3.
2007년 자료가 있습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입니다. 이 명단을 보면 행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고교는 모두 대원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였습니다. 사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 역시 대원외고였습니다.

특별한 현상도, 유별난 사례도 아닙니다. 불가역적 흐름입니다. 2007년 기준으로 역대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를 보면 대원외고가 322명으로 441명의 경기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원외고가 경기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짧은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약진입니다. 이것이 흐름이고 추세입니다.

이런 흐름과 추세가 나타나는 요인은 경제력 때문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고,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아야 성적이 껑충 오르고, 성적이 올라야 특목고에 진학하고, 특목고에 진학해야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법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학자금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공부에 전념해야 고시를 1년이라도 더 빨리 통과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고시 공부하던 학생이 농사짓는 부모 보기 미안해 한강에 투신하고, 다른 고시생이 시골 사는 부모에게 손 벌리기 미안해 마사지 업소에 칼 들고 뛰어 들어갔다는 뉴스가 반증하는 법칙이죠.

유명환 장관의 딸도 이런 전형적인 경로를 밟았을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니까 외국어 능통자가 될 여건을 갖췄고,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으니까 학자금 걱정 않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응시자격을 얻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결과 이전에 출발점부터 달랐을지 모릅니다.

4.
바뀌는 건 없습니다. 사법고시 대신 로스쿨제를 도입해도, 행정고시 이름을 ‘5급 공채시험’으로 바꿔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습니다. 제도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어도 공부할 만한 사람, 공부할 여건이 되는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은 요지부동일 테니까요. 오히려 행정고시를 없애고 사법고시를 없애면 채용과정에서 '음서제'의 기운이 더 많이 스며들지 모릅니다.

바꾸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없애라고 할 수도 없수도 없습니다. 공시ㆍ공채 시스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거머쥐어야 하는 것은 공정 평가와 공정 선발뿐입니다. 굳이 하나 추가하자면 상피제를 들 수 있겠죠. 심하게 감질 나지만 우리 현실이 이렇습니다.

5.
중국에 ‘태자당’이 있습니다. 핵심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당ㆍ정ㆍ군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숫자가 대략 4천명쯤 된다고 합니다. 일본엔 ‘세습의원’이 있습니다. 부모 또는 조부모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들입니다.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 나선 ‘세습후보’가 32명, 이 중 당선된 사람이 18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중국의 ‘태자당’과는 경로가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ㆍ관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가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이 있었고, 어머니 ‘대타’로 비례대표가 된 여성 의원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위해야 할까요?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도, 일본도 비슷하니까 그러려니 생각해야 할까요? 유명환 장관 딸 소동 뒤끝에 서서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토씨'


1.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실화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밤 11시를 갓 넘긴 시간에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섰는데 사복형사 두 명이 다가와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더군요. 이유를 대기 전에는 못 내놓겠다며 버티기를 5분여, 결국 사복형사가 말하더군요. 며칠 전에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제 얼굴이 용의자 몽타주와 비슷하다고, 그래서 미행했다고.

2년 후. 직장 야유회를 끝내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남대문 시장 정류소에서 시청역 지하철로 향하던 중에 불심검문을 당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9번. 남대문에서 시청역까지의 그 짧은 거리에서 대략 1분 30초에 한 번꼴로 전경에 의해 통행이 제지당했습니다. 그 때 시위가 있었는데 행색이 시위 참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뒤 자진해서 거울 용도를 제한했습니다. 선한 인상을 갖고 있다는 나르시시즘을 과감히 버리고 거울은 눈곱이나 이에 낀 고춧가루 색출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7일 통과시킨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꼭 저를 겨냥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불심검문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불심검문 시 경찰이 검문대상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하고, 신분증이 없을 경우 지문 채취나 다른 연고자를 통해 신분을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거동 의심자에 대한 소지품 검사 범위도 확대해 ‘흉기’로 한정됐던 검사 대상에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추가했습니다.

시민이 이같은 불심검문을 거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지문 검사 외에는 거부할 수 없도록 했거든요. 

3.
어쩌겠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안보와 치안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싫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자위책을 찾아봅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여 거리를 걸을 때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일도, 손가락에 잉크 묻혀 지문 찍는 일도 피할 수 있겠죠.

가방은 투명가방으로 바꿔야 합니다. 경찰관이 소지품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먼저 자진 공개하는 겁니다.

등산이나 낚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습니다. 레저용 칼이나 지팡이, 낚싯대 거치대를 지참했다가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거든요.

4.
헌데 어쩌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같이 인상이 ‘더러운’ 사람들은 소용없습니다. 그래 봤자 거동 의심자 대열에서 열외 처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집회 장소를 지나다가 채증이라도 되는 날엔 소환장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승용차를 애용하자고, 동네 슈퍼에 담배를 사러 갈 때도 승용차를 몰고 나가 불심검문을 당할 여지를 아예 없애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소용없습니다. 검문 대상에 차량 탑승자도 포함되거든요.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하는 겁니다. ‘더러운’ 인상을 선한 인상으로 바꿔 ‘모범시민’으로 대접받는 겁니다. 적잖은 돈이 들겠지만 길거리에서 수없이 당할 불쾌감과 모멸감을 생각하면 적금 들어 수술비용 대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주위에서 지인들이 그러네요. ‘너는 견적이 아예 안 나온다’고.

전 어떡해야 하나요?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