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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지난 한 해가 어땠다고, 지난 한 해를 보내는 소회가 어떻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빠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국회는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려는 한나라당과 막으려는 민주당이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남은 몇 시간을 채울 일들은 아직도 도열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하렵니다. 안 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입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맞춰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결말 또한 예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단편이 2009년 한 해를 상징하는 요소인지 모릅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예정된 결말을 향해 진행되는 모습 말입니다.

아픈 마음으로 확인합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진행되는 동안 객체에 머물러야 했던 ‘우리’의 무력함을 확인합니다. 예정된 수순에 변형을 가하고 예정된 시각을 돌릴 수 있는 변수가 여럿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흘려버린 ‘우리’의 무력함을 확인합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변수는 변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건 단지 외적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내부 동력이 갖춰지지 않는 한 외부 요인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임을 확인합니다.

2.
추모 열기가 여름 뙤약볕보다 더 뜨겁게 발산되던 때였습니다. 시사 주간지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작금의 국민 정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고, 희망과 체념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촛불에서 분출되고 향불에서 되살아난 국민 정서에 성취감을 얹어주지 못하면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제 너스레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국민이 스스로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각종 강연과 교양의 객석을 가득 메우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기대하다 지친 국민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감 선거에서, 재보선에서 ‘차선’이라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국민은 결코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꿔야 합니다. ‘우리’라는 주어를 ‘그들’로 바꿔야 합니다. 문제는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이고 학자연하는 지식인입니다. ‘차선’이라도 만들려고 투표장으로 향한 국민에게 구태를 보이는 정치인, ‘비전’을 강구하기 위해 강연장으로 향한 국민에게 ‘흘러간 18번’을 되읊는 지식인이 문제입니다. 최일선에 서서 내부 동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들이 튜닝 대상이 돼 버린 게 문제입니다.

3.
명백합니다. 6.2지방선거 또한 외적 계기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의 필승 의지를 가다듬으며 필승의 비법으로 연합을 부르짖지만 이게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이건 기껏해야 엔진 출력을 잠시 높여주는 첨가제에 불과합니다.

세밑이 되면 ‘송구영신’을 떠들지만 너무 먼 얘기입니다. ‘그들’이 낡은 것조차 털어내지 못하면 ‘영신’은 기대난망한 일이 됩니다.

어쩌면 이런 설정 자체도 구태인지 모릅니다. ‘정치인과 지식인에 이끌리는 국민’이란 낡은 도식에 빠진 것인지 모릅니다. 국민 스스로가 ‘최선’을 창출할지 모릅니다. 뻔한 시각에 뻔한 주장을 하는 ‘그들’의 ‘객체’임을 거부할지 모릅니다. 국민이 ‘우리’가 돼 ‘그들’에게 혁신을 강제하면서 ‘송구영신’을 이뤄낼지 모릅니다. 꼭 세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주체’로 우뚝 설지 모릅니다.

아니,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정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 스스로 또 하나의 임계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체와 객체, ‘송구’와 ‘영신’의 임계점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Posted by '토씨'


정부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해줄 계획이란다. 오늘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안건을 의결한 뒤 31일에 사면장을 내줄 계획이란다. 

근데 왜일까? 심드렁하다. 새롭다는 느낌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됐던 사안이기 때문도 아니고 사면이 기정사실이 됐기 때문도 아니다. 말 그대로다. 새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미 사면복권을 받았다. 원위치 되는 일반 사면복권이 아니라 ‘찬란한 부활’에 가까운 특별 사면복권을 받았다. 대통령에 앞서서 언론이, 그리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이미 금테 두른 사면장을 발부해 줬다.

사면복권론의 주된 논거였던 ‘이건희 역할론’을 읽으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전 회장의 위상과 파워와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는 ‘역할론’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국제 스포츠계의 유력한 스폰서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 스포츠계의 스폰서이기 이전에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일군 오너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CEO다. 한마디로 이건희 전 회장은 ‘거인’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건희 전 회장은 ‘구세주’다. 평창, 아니 대한민국에 국익을 안겨줄 백마 탄 왕이다. ‘죄인’의 멍에를 벗고 IOC위원으로 복귀하면 평창 유치는 따 논 당상과 다를 바 없으니 그는 전지전능한 구세주다.

이건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선험적인 단정이다. 그래서 반론과 반문을 허하지 않는다. 이건희 전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유치 경쟁국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반론을 허하지 않는다. 이건희 전 회장이 IOC 위원 겸 스폰서로 맹활약할 때 평창이 연거푸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이유가 뭐냐는 반문 또한 허하지 않는다.

이런 상식적인 반론과 반문은 국익이라는 맹목적인 목표 앞에서 내동댕이쳐진다. 신성불가침의 대전제가 돼 버린 국익 앞에서 상식적 문제제기는 감성적 상황논리에 무릎 꿇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확장될 게 뻔하다. 아니 이미 확장되고 있다. 어떠한 상식적 문제제기도 허하지 않는 국익론이 이건희 전 회장 앞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있다. 평창이라는 지역 범위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경제라는 거시 틀에서 ‘이건희 역할론’을 스멀스멀 피워올리고 있다. 국부 확대-생산 유발-일자리 창출이라는, 그 누구도 감히 토 달지 못하는 국익을 앞세워 ‘거인’ 이건희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15% 가량을 점하는 삼성전자를 국익의 실현 통로로 설정하면서 ‘구세주’ 이건희의 역할론을 부각하고 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퍼붓는 광고에 일희일비하는 언론이 가장 먼저 나서서 ‘이건희 역할론’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이 뭐가 대수겠는가. 2005년에 일었던 ‘이건희 신드롬’을 능가하는 영화가 재현되는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 하나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나 있긴 하다. 사면장 수령 여부가 등기이사 등재 여부를 가른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괘념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이미 3세 경영체제 정비를 마쳤다. 이건희 전 회장의 분신들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경영 일선에 포진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등기이사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사진=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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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어떤 게 더 욕된 걸까? 새해 예산안을 직권상정 하는 것과 사상 최초로 준예산 사태를 부르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더 욕된 걸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후자다. 전자는 ‘원 오브 뎀’이지만 후자는 ‘최초’다. 직권상정은 김형오 의장 외에도 수많은 국회의장이 선례를 남겼지만 후자는 누구도 테이프를 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전자로 가면 귀 한 번 아프고 말지만 후자로 가면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야가 연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공동으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김 의장의 ‘입장’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가 “정 안 될 경우 직권상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의장 만이 아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초의 준예산 사태를 부른 공동정범이란 낙인이 찍히는 점은 차치하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예산안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 초에라도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준예산 집행 기간을 하루라도 줄여야 한다. 헌데 문제가 있다. 내년으로 넘기면 처리 여지가 더 좁아진다. 어느 한쪽이 대폭 양보하면 ‘그럼 왜 버텼냐’는 반문이 돌아올 것이고 양쪽이 한 발씩 양보하면 ‘그럼 왜 싸웠느냐’는 핀잔이 날아올 것이다. 어떤 경우든 덤터기 쓰는 불상사를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분석이 나온다. 직권상정과 강행처리 수순이 개시됐다고, 지금 펼치는 여야 협상은 폭풍을 예고하는 살랑바람이라고 풀이한다. 초재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역사적 오명을 쓰지 않으려는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감행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렇게 제야의 종소리와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겹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시나리오가 하나 있긴 하다. 여야가 막판에 한 발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루는 극적 상황이다.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한나라당이 양보를 하려면 청와대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그곳에서는 4대강 사업 고수를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 양보할 여지도 없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보의 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보의 높이와 준설량을 대폭 조정하자는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을 것이다. 숫자놀음을 하다가 ‘0’을 몇 개 뺀 후 생색내는 게 퇴로 확보 차원에선 더 용이했을 테니까. 한나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사업의 전면 수정을 뜻하는 것이고 민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반대투쟁의 전면 폐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발 걸쳐보자. 양보와 타협이 실현될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렇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라고….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던 국정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거나 민주당이 스스로 내걸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니까 ‘사건’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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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아들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군요. 

‘아빠, 편지 봤어?’

느닷없이 웬 편지 타령인가 싶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무슨 편진데?’
‘…아니, 관리비 고지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뭐 반가운 편지라고 이른 아침부터 호들갑인가 싶어 그냥 “알았어”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곤 까맣게 잊었죠.

집에 들어가니 침대 옆 탁자에 문제의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봉투가 놓여있더군요. 달갑지 않았습니다. 한파로 끌어올린 보일러 온도만큼 관리비 또한 늘어났을 게 분명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관리비는 전 달에 비해 8만원 넘게 더 나왔더군요.

한숨 크게 내쉬고 봉투를 집어던지려던 순간 흰 종이가 끼어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포장이사업체의 천연색 홍보전단과는 다른 순백의 종이였습니다.

‘아빠에게.
아빠, 나 때문에 화나거나 짜증날 때가 자주 있지? 비록 작은 돈이지만 받아주고 앞으로 오래오래 살자.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의 자랑스런 장남, ○○올림’

순백의 종이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렁이가 기어가듯 한 글자 한 글자가 제각각 누워있었습니다.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반강제로 쓴 의례적인 편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편지를,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받은 게 처음이라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밖에 안 된 놈이 아빠에게 돈을 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환갑 넘은 아버지와 서른 넘은 아들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니까요. 

뜨악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봉투를 다시 뒤졌습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10원짜리 동전 하나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아들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무슨 돈인데?”
“응, 만원.”
“만원? 네가 돈이 어딨어?”
“용돈 아껴서 모은 거야.”
“그걸 왜 아빠에게 줘?”
“아빠 돈 버느라고 힘들잖아.”
“그래서 보태주려고?”
“응.”
“근데 왜 돈이 없냐?”
“심부름하느라고 썼어.”
“심부름? 무슨 심부름?”
“할머니가 뭐 사오라고 하셨는데 돈 꺼내기 귀찮다고 일단 그 돈으로 쓰래.”
“그래서?”
“나중에 받았어.”
“그럼 왜 아빠한테 안 줘?”
“히히, 깜빡했어.”

저도 웃고 아들도 웃었습니다. 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아들은 뒷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그리곤 잠깐 동안의 정적…. 여전히 미소를 흘리는 아빠를 남겨둔 채 방을 나가던 아들이 돌아서며 한 마디 하더군요.

“아빠, 선물 좀 잘 감춰.”
“왜?”
“△△이 봤잖아.”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이 장롱 속에 숨겨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했다고 밀고하는 아들이 양미간을 찌푸립니다. 천재라더니 조그만 선물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하냐는 투로 침대에 널브러진 아빠를 내려다봅니다.

벌써 다 컸나 봅니다. 아빠의 고충을 헤아리는 것도 그렇고, 같은 돈으로 아빠와 할머니의 환심을 동시에 사는 것도 그렇고, 생색은 다 내면서도 결국은 제 주머니로 돈을 집어넣는 것도 그렇고…. ‘원소스 멀티유스’의 비법에다가 봉이 김선달의 비기까지 벌써 깨우친 것 같습니다^^

팔불출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빠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아들은 정말 “자랑스런 장남”입니다^^

Posted by '토씨'


이견은 없다. 모두가 ‘사정’으로 분석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회지도층 비리 엄단과 토착 비리 근절 지시를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한다.

포인트는 다르다. 어떤 언론은 사정의 타깃이 “과거 정부 및 야당 인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어떤 언론은 4대강과 세종시 등 정권의 명운을 건 사업을 앞두고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하려는 게 사정의 포석이라고 풀이한다.

부인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공기업을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 비리에 대한 수사를 펼친 바 있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까지 추가했으니 ‘과거’에 대한 사정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특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공직 사회의 동요가 본격화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직사회 기강 확립용 사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다른 타깃, 다른 목적은 없을까?

거꾸로 추론해 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대로 검찰 수사가 이뤄진다고 가정해놓고 그것이 미칠 여파를 헤아려보자. 그럼 나온다. 대대적인 사정 타깃이 야권 정치인, 그리고 공직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놓고 비판한 토착 비리의 온상은 지방권력이다. 이곳을 매개로 해서 토착 비리가 창궐한다. 그리고 지방권력 위에 군림하는 게 바로 중앙정치세력이다.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행사하고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이다.

근데 공교롭다. 호남을 제외한 지방권력 대부분은 한나라당에 의해 장악돼 있다. 따라서 검찰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흔들림없이 밀고 나가(면)” 한나라당도, 아니 한나라당부터 사정권에 들어온다. 친이 친박 가리지 않고 타깃이 된다.

이런 추정이 현실화 된다면 어떤 결과를 빚을까? 말 할 필요가 없다. 공직사회의 동요 이전에 한나라당의 동요부터 잠재울 수 있다. 행여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행여 세종시 문제를 놓고 친이와 친박 진영 간에 진검승부가 벌어지더라도, 행여 이 여파가 7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까지 영향을 미치더라도 일상 궤도를 넘어서는 이반과 동요를 단속할 수 있다. 계파 논리 이전에 자기 생존논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나라당 조직을 다잡을 수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해서 토착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하니 이 같은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친박계 의원이 사정 대상이 된다고 해도, 친박계 의원이 ‘정치적 사정’에 반발한다고 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미 밑자락을 깔아놨다. 노무현 정부의 총리까지 기소하는 수를 뒀고, 이에 반발하는 세력에 대해 “걸핏하면 정치수사라고 비난한다”며 맞받아쳤다. 이게 근거가 된다. 사정은 상대 계파를 누르기 위한 정치 수사가 아니라 법질서 세우고 ‘국격’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으니 이 선만 재확인하면 된다. 

대대적인 사정 계획이 용두사미가 돼도 큰 문제는 없다. 찌르는 칼보다 겨누는 칼이 더 위협적인 법이다. 이명박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의 명운을 가릴 시기 동안 겨누는 칼의 위력을 유지하면 성과는 충분히 거둔다. 2월 세종시 수정 시도부터 6월 지방선거, 그리고 7월 전당대회까지 동안 말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법무부 등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한명숙 공소장’에는 구멍 하나가 크게 뚫려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부분이다.

검찰의 공소내용을 보면 산업자원부 고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밀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돼 있다. 총리공관 오찬이 있기 한 달 전인 2006년 11월말에 이원걸 당시 2차관이 곽영욱 전 사장에게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고 전화했고, 담당과장이 직접 곽영욱 전 사장의 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헌데 없다. 산자부 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사장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직접적인 이유가 제시돼 있지 않다.

실마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게 있다. 이원걸 전 2차관이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의 지시로 (곽영욱 전 사장에게)전화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밝혀졌다”고 단정하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믿자. ‘한국일보’가 전한 내용을 사실로 전제하자.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의 지시로 산자부 고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에 앉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해서 한명숙 전 총리의 ‘역할’이 확정되는 건 아니다. 정세균 대표의 ‘지시’ 이전에 한명숙 전 총리의 부탁 또는 요청이 있었다는 게 확증되지 않는 한 산자부 고위간부들의 ‘동분서주’가 한명숙 전 총리의 인사 개입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게 핵심 문제다.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사장 사이에 인사 청탁과 금품 수수가 있었다는 검찰의 공소내용이 입증되려면 먼저 정세균 대표를 거쳐야 한다. 정세균 대표가 곽영욱 전 사장의 뒷배를 봐준 이유를 한명숙 전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시점이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보다 한 달이나 앞섰던 점을 설명해야 한다.


관련 보도가 있다. “정세균 대표가 2006년 12월 20일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참석하기 전에 곽 전 사장을 따로 만난 적이 있(다)”는 ‘동아일보’ 보도다. ‘동아일보’의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인지 불투명하지만(정세균 대표는 곽영욱 전 사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 한다고 주장하고 있단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핵심 문제를 설명하는 결정적 내용은 아니다. 2006년 12월 20일과 2006년 11월 말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메우는 데는 일정한 기여를 하는 보도이지만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관련 보도가 하나 더 있다. ‘조선일보’ 보도다. “곽 전 사장은 2005년 6월 대한통운 사장에서 물러난 뒤 한 전 총리에게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해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으며) 이에 한 전 총리는 2006년 산자부측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동아일보’가 설명하지 못한 핵심 문제, 즉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기사의 “산자부측”을 “정세균”으로 바꾸면 일단 앞뒤는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특정하지 않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산자부측”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구체적으로 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예단하지는 말자. ‘한명숙 공소장’에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고 해서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재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이런 말이 검찰에서 흘러나온다. “우리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산자부 차관과 과장이 무슨 이유로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일을 했는지는 재판 때 입증하겠다”는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못 밝힌’ 게 아니라 한명숙 전 총리측에 ‘힌트’를 주는 걸 꺼려 공소장에서 ‘안 밝힌’ 것이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검찰이 쥔 패가 태산을 울린 서생 한 마리에 불과한지, 아니면 회심의 히든카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재판과정에서 추가로 밝히겠다고 하니 굳이 앞서서 판단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점만 확인하자. ‘예상문제’가 될지 모르니 반드시 밑줄 쫙 그어야 하는 사안이다. 하나는 검찰 수사의 미완성을, 다른 하나는 검찰 수사의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첫째, 검찰은 정세균 대표를 조사하지 않았다. 소환 조사하지 않았고 서면 조사했다는 말도 없다. 근데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핵심 고리인 정세균 대표를 조사하지 않고 어떻게 한명숙 전 총리의 인사 개입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둘째, 다시 등장한다. 최초 보도 때 거명됐다가 한명숙 전 총리의 실명이 나오면서 쏙 들어갔던 두 인물, 즉 J씨와 K씨의 이니셜이 일부 언론에 의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곽영욱 전 사장이 금품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세 명 가운데 두 명, 참여정부 때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실세 두 명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게 뭘 뜻하는 걸까?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를 제공한 다른 인물이라고 검찰(과 언론)이 의심하는 걸까? 아니면 한명숙 전 총리와는 별개로 앞으로 수사하겠다는 걸까?

▲사진=15일 열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과 수구언론 정치공작 규탄대회’에 참석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직접적인 증거 또한 아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만날 때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이 동석했다는 ‘한겨레’ 보도 역시 ‘정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필이면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서 곽영욱 전 사장이던 희망하던 공기업(석탄공사와 남동발전)를 관할하던 정세균 대표가 왜 동석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새롭지는 않다.

‘한명숙 공대위’의 양정철 대변인이 일찌감치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사장은 안면이 있던 관계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일대일로 만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겨레’의 보도는 양정철 대변인의 이같은 주장을 뒤엎는 것은 아니다. 양정철 대변인의 주장처럼 가깝지 않은 사이였다면 한명숙 총리가 곽영욱 전 사장을 총리 공관으로까지 부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 아울러 그런 자리에 당시 장관이던 사람까지 동석시켜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직접 증거는 아니다.

어차피 진실은 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대로 검찰이 돈이 오간 직접적인 증거, 즉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어차피 최종 판단은 법원에 의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다. ‘한명숙 사건’과 아주 유사한 다른 사건에 눈길을 돌린다.

한나라당의 박진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다.

흡사하다. 한쪽은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한쪽은 받은 일이 없다고 맞서는 면에서, 만난 건 사실이지만 돈이 오가지는 않았다는 항변이 나오는 면에서, 돈을 건넸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검찰이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기소했다는 면에서 두 사건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법원의 태도는 아주 신중하다. 원고와 피고가 팽팽히 맞서는 것을 보고 이례적으로 시연까지 연출했다. 돈을 줬다는 박연차 전 회장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골라 박진 의원을 만날 때 입었던 것과 같은 양복을 입히기까지 했다. 박연차 전 회장이 정말 2만 달러가 든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면 폼새에서 티가 나지 않았겠느냐는 가설 위에 이렇게 재연극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정표가 될지 모른다. 박진 의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한명숙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의 참고사례가 될지 모른다. 법원 연출의 재연극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 또한 정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법원의 판단 잣대는 다른 데서 구할 것이다. 그것이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뇌물 공여자의 진술의 일관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증거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증거의 직접성을 중시하며 이런 진술과 정황을 배척하는지 지켜볼 일이지만 아무튼 하나의 창은 될 수 있다. 치열하고도 기나긴 법정 공방의 끝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창 말이다.

박진 의원에 대한 판결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 출처=한명숙 전 총리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