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지난 한 해가 어땠다고, 지난 한 해를 보내는 소회가 어떻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빠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국회는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려는 한나라당과 막으려는 민주당이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남은 몇 시간을 채울 일들은 아직도 도열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하렵니다. 안 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입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맞춰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결말 또한 예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단편이 2009년 한 해를 상징하는 요소인지 모릅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예정된 결말을 향해 진행되는 모습 말입니다.
아픈 마음으로 확인합니다. 예정된 수순이 예정된 시각에 진행되는 동안 객체에 머물러야 했던 ‘우리’의 무력함을 확인합니다. 예정된 수순에 변형을 가하고 예정된 시각을 돌릴 수 있는 변수가 여럿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흘려버린 ‘우리’의 무력함을 확인합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변수는 변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건 단지 외적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내부 동력이 갖춰지지 않는 한 외부 요인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임을 확인합니다.
2.
추모 열기가 여름 뙤약볕보다 더 뜨겁게 발산되던 때였습니다. 시사 주간지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작금의 국민 정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고, 희망과 체념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촛불에서 분출되고 향불에서 되살아난 국민 정서에 성취감을 얹어주지 못하면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제 너스레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국민이 스스로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각종 강연과 교양의 객석을 가득 메우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기대하다 지친 국민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감 선거에서, 재보선에서 ‘차선’이라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국민은 결코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꿔야 합니다. ‘우리’라는 주어를 ‘그들’로 바꿔야 합니다. 문제는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이고 학자연하는 지식인입니다. ‘차선’이라도 만들려고 투표장으로 향한 국민에게 구태를 보이는 정치인, ‘비전’을 강구하기 위해 강연장으로 향한 국민에게 ‘흘러간 18번’을 되읊는 지식인이 문제입니다. 최일선에 서서 내부 동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들이 튜닝 대상이 돼 버린 게 문제입니다.
3.
명백합니다. 6.2지방선거 또한 외적 계기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의 필승 의지를 가다듬으며 필승의 비법으로 연합을 부르짖지만 이게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이건 기껏해야 엔진 출력을 잠시 높여주는 첨가제에 불과합니다.
세밑이 되면 ‘송구영신’을 떠들지만 너무 먼 얘기입니다. ‘그들’이 낡은 것조차 털어내지 못하면 ‘영신’은 기대난망한 일이 됩니다.
어쩌면 이런 설정 자체도 구태인지 모릅니다. ‘정치인과 지식인에 이끌리는 국민’이란 낡은 도식에 빠진 것인지 모릅니다. 국민 스스로가 ‘최선’을 창출할지 모릅니다. 뻔한 시각에 뻔한 주장을 하는 ‘그들’의 ‘객체’임을 거부할지 모릅니다. 국민이 ‘우리’가 돼 ‘그들’에게 혁신을 강제하면서 ‘송구영신’을 이뤄낼지 모릅니다. 꼭 세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주체’로 우뚝 설지 모릅니다.
아니,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정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 스스로 또 하나의 임계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체와 객체, ‘송구’와 ‘영신’의 임계점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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