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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선 공약을 뒤집느냐는 말은 하지 않겠다. 세종시만 갖고 따질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747’도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자칫하면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왜 대운하 공약 실현을 반대했느냐’는 반문이다.

토도 달지 않겠다. 세종시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이 맞느냐 그르냐는 여기서 가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 얘기하자.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이다. 양심에 따르고 역사적 소명의식에 순응하는 그의 행동방식이다.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하지 못했다. 당당하지도 않았다.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이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대평 총리 무산 파동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거세게 이는데도 청와대는 ‘입장이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앞에서 그렇게 언급하면서 뒤에서 모색했다. 심대평을 대체할 충청 출신 총리를 찾았다. 충청지역 여론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돌파력을 조금이라고 끌어올리기 위해 묘수 찾기에 나섰다.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결단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킴으로써 진정성을 설파할 선제적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미지를 망쳐버린 것이다.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행보를 그음으로써 국민 뇌리 속에 부정적 영상을 심은 것이다.


이게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 다시 말해 ‘대통령과의 대화’ 화법이 잘못됐다고 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설득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데생 수준의 이미지에 채색을 하는 발언만 쏟아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반문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역사적 소명에 머리 조아리고자 했다면 왜 그동안 좌고우면 했냐고, 왜 그동안 이중플레이 했냐고 되묻게 만들었다.

하려면 확실하게 했어야 한다. 맨 처음에 입장을 밝혀 논의 주도권을 쥐든지, 아니면 맨 나중에 입장을 밝혀 수정안을 보완하든지 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핀트라도 바꿨어야 한다. 중간 타이밍에 ‘국민과의 대화’를 여는 게 불가피했다면 경위를 밝히는 데 주력했어야 한다. 자신이 왜 몇 달을 ‘모르쇠’로 일관했는지, 왜 총리 뒤에 숨었어야 했는지 밝혔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밝혔어야 했다. 자신이 설정한 ‘정도’를 걷고자 했으면서도 ‘샛길’을 밟아야 했던 연유를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때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내버렸다. ‘경위’ 대신 ‘입장’만 일방적으로 ‘연설’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목이 방증하듯이 국민과 대화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대통령과 대화한 것이다. 그렇게 거울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울타리를 증축한 것이다.

▲사진=지난 28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장면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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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구 국세청 국장이 폭로 릴레이를 벌이는 것은 원한 때문이다. 한때 국세청 차장 후보로 거론되다가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도 억울한데 정권 핵심부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고 급기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까지 된 데 대한 앙갚음으로 폭로 릴레이를 벌이는 것이다. 민주당과 부인 홍혜경 씨에 의해 대리 전달되는 그의 주장을 종합하면 그렇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안원구 국장의 폭로 내용을 사실로 전제해 놓고 여기에 상식을 대입하면 얼마든지 헤아릴 수 있다. 옳건 그르건 그의 심사는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다. 아무리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는 빈 구멍이 있다.

안원구 국장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유임 로비를 벌인 인물이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정통TK 관료로서 이명박 정부의 최고 실세인 이상득 의원과 독대까지 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지난해 4월 좌천됐다. 충청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 끈이 없던 한상률 전 청장은 유임된 반면 막강 인맥을 자랑하던 안원구 국장은 좌천됐다. 왜였을까?

지금까지 나온 폭로 내용을 종합하면 한상률 전 청장의 ‘단독 플레이’ 같다. 유임 로비를 위해 정권 실세에게 10억원을 바치려던 한상률 전 청장이 3억만 보태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박정하게 거절한 안원구 국장을 ‘팽’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정합성이 떨어진다. 정권의 속성과 인사 풍토, 그리고 국세청의 위상을 고려하면 그렇다.

한상률 전 청장은 비록 유임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입지가 여전히 불안했다. 이런 한상률 전 청장이 정권 최고실세와 가까운 인물을, 그것도 4대 권력기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국세청의 핵심 요직에 있는 인물을 자기 맘대로 좌천시킨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상률 유임 로비를 결과적으로 성공시킨 안원구 국장의 파워를 감안해도 그렇다. 남의 유임 로비에는 발 벗고 나서면서 자신의 구명 로비를 포기했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럼 뭘까? 한상률 전 청장의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정권 실세의 ‘윤허’ 아래 진행된 ‘팽’일까? 그렇다면 그 배경이 뭘까? 정권 실세는 왜 하루아침에 안원구 국장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걸까?

일반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뒷조사’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참여정부 말기 포스코건설에 대한 세무조사를 관장하던 안원구 국장이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임을 알려주는 문건을 확보한 것을 계기로 안원구 국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뒷조사했다는 음해가 퍼졌고, 이게 화근이 돼 정권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다. 민주당의 폭로와 정두언 의원의 시인에 입각해 보더라도 그럴싸하다. 정두언 의원의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해 2월, 한상률 전 청장에게 ‘MB파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하지 않는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뒷조사’에 민감해하던 당시 분위기, 그리고 그 시점을 볼 때 안원구 국장의 좌천과 맥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해석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안원구 국장의 폭로에 따르면 국세청 간부들이 ‘청와대 뜻’ 이라는 이유 등을 대며 사퇴를 종용한 시점은 올해 7월로, 안원구 국장이 좌천된 지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여기서 의문이 싹튼다. 안원구 국장을 좌천할 즈음에 이미 그의 ‘뒷조사’ 음해가 돌았다면, 그래서 정권 눈밖에 났다면 왜 그때는 그냥 내버려 뒀을까? 올해 7월에는 전방위로 사퇴를 종용했는데 권력의 위세가 더 셌던 지난해 4월에는 왜 좌천 정도로 갈음했을까?

입막음용이었다는 분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럴 거라면 좌천이 아니라 승진을 시켜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게 안전하다. 그게 아니라면 정권 출범 직후의 그 막강한 위세로 압박하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회유도 압박도 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내버려 뒀다.

도대체 뭘까? 왜 안원구 국장을 어정쩡하게 내버려 뒀을까? 왜 1년 3개월 동안 국세청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전개되도록 방치했을까? 왜 사단이 날 여지를 남겨뒀을까?

두 가지 개연성이 있다.

하나. 안원구 국장이 좌천되던 즈음의 여권 역학구도가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다. 정두언 의원이 ‘MB파일’을 요구하던 시점은 이상득 의원과의 견제-갈등 구도가 고조됐던 시기다. 이 역학구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쪽에선 치고 다른 쪽에선 막으려는 힘의 균형관계가 사퇴가 아닌 좌천, 승진이 아닌 좌천을 낳았을 수 있다. 

둘. 청와대의 부주의 개연성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안팎에서 탄식이 나온단다. “안원구 국장이 무엇인가에 불만을 품었다면 잘 보듬어서 달랬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이런 일이 터졌다”고 후회한단다. 청와대의 이런 탄식에 따르면 가볍게 봤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데는 몰라도 청와대는 애초부터 안원구 국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한상률 전 청장의 활동공간을 넓혀줬다는 얘기가 된다.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앞서 제기한 의문이 두 가지 개연성 범주 안에서 해소될 수 있다면 안원구 폭로 릴레이에 뚫려 있는 구멍은 메울 수 있다. 그리고 폭로의 끝도 대충은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좌천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뒷조사’ 외에 다른 모종의 요인이 정권 실세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고, 이 요인이 안원구 국장에 대한 처리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안원구 폭로 릴레이에 뚫린 구멍은 더욱 커지고, 폭로의 끝은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또 터질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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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충을 이해한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22명, 세계 평균 2.5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실정에서 찬밥 더운밥 가리는 건 한가한 짓이다.

그래서 동의한다. 세자녀 부모에게 정년 연장 혜택을 주고 고교 수업료와 대학 학자금을 우선 지원하는 방안에 대체로 동의한다. 셋째 자녀에게 대입과 취업에서 우대 혜택을 주는 건 노력이 아니라 운명에 혜택을 주는 것이기에 떨떠름하지만 그래도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의사가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취학 연령을 만6세에서 만5세로 1년 앞당기면 출산율 제고의 최대 걸림돌인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정부 주장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얼핏 보면 맞는지 모른다. 초등교육은 무상인 반면 유치원 교육은 유상이다. 그러니까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면 수백만원의 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오산이다. 표면만 보고 이면은 보지 못하는 어림셈이다.

그래봤자다. 돈은 똑같이, 또는 더 많이 들게 돼 있다. 특히 맞벌이 가정과 한부모 가정의 경우에 그렇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겪어본 사람 또한 다 안다. 코흘리개를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 심정이 그리 편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도 등 떠밀 수밖에 없는 게 교육 이전에 탁아 때문이라는 것을 다 안다.

그 반영이 학원의 특성이다. 서울 강남과 강북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초등생 대상 학원의 특징이다.

강남은 초등생 학원조차 단과 위주다. 그래서 강남 초등생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을 배우면 다른 학원으로 이동한다. 강북은 전 과목을 가르치는 보습학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강북 초등생은 이동하지 않는다. 교습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학원에서 학교 숙제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부모의 여력 때문이다. 경제적-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강남 어머니는 집중한다. 교육 컨설턴트로서, 생활 관리자로서 자녀의 동선과 스케줄과 교육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반면에 강북 어머니는 떠맡긴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아이 돌볼 틈이 없기 때문에 교육과 육아를 동시에 위탁한다.

이게 현실이다. 일반화할 통계는 비록 제시하지 못하지만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현실이다. 강남과 강북, 부유층과 빈곤층, 특히 외벌이와 맞벌이, 두부모와 한부모 가정 사이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보완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치원에 종일반이 있는 것처럼 초등학교에는 방과 후 학교가 있다. 이걸 이용하면 된다. 어차피 종일반에 들어가려면 몇만원을 추가 지출해야 하니까 그 돈으로 방과 후 학교 수강료를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반쪽짜리다. 형태는 같지만 운영은 전혀 다르다. 방과 후 학교는 보통 50분 단위로 쪼개진다. 유치원 종일반 끝나는 시간, 다시 말해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맟추려면 족히 너댓 개 강좌를 수강케 해야 한다. 자아가 발달되지 않은 코흘리개에게 감성적 충격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대책이 없다. 교실을 ‘뺑뺑이’ 돌아야 하는 아이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급식과 틈새시간 관리다. 유치원 종일반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와 생활 관리가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짜려면 제대로 짜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려 한다면, 그리고 사교육비를 줄이려 한다면 취학연령이 아니라 유치원 교육부터 손질해야 한다. 무상교육 영역 밖에 있는 유치원을 공교육 체제에 편입시킨 뒤 초등교육과의 연계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최소한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탁아 시스템이라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전제되지 않은 취학연령 조정은 신판 우골탑 쌓기다. 서민, 특히 맞벌이-한부모 가정의 고혈 위에서 벌이는 성과 쌓기다. 

▲사진=학원 수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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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김인규 KBS 사장이 PD를 성토했습니다. 올 1월 ‘서울대 동문회보’와의 인터뷰에서 “PD들이 많다보니까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 막 만들고 프로그램 하나에 PD가 8명씩 매달린다”고 비판했습니다. “방송개혁 1번은 PD 개혁”이라고도 했고 “PD들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 돼 있다”고도 했습니다. 거듭 확인했습니다. 얼마 전 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 면접에서 1월 발언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김인규 사장은 “변화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직과의 통합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김인규 사장만이 아닙니다. 이병순 전임 사장은 취임 직후 ‘시사투나잇’을 폐지했습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몇몇은 선임 직후 ‘PD수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실상이 이렇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PD는 공적이 되고 있습니다. 김인규 사장 말처럼 손 봐야 할 ‘1번’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PD는 아닙니다. 대상은 특정 PD입니다. 드라마를 만들고 버라이어티쇼를 만드는 예능 PD가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사 PD로 타깃이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MB방송'이 정조준하고 있는 대상은 PD저널리즘입니다. PD가 만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과녁입니다.

얼추 헤아릴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의 일, 아니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일을 떠올리면 PD저널리즘을 과녁 삼는 심사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촛불시위가 잦아든 후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PD수첩’에 ‘적의’를 내보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황금 같은 1년을 앗아간 원흉으로 ‘PD수첩’을 지목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PD수첩’한테 되로 받은 걸 PD저널리즘에게 말로 갚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파편적입니다. ‘심사’를 읽는 실마리는 될 수 있지만 ‘전략’을 읽는 실마리는 될 수 없습니다. ‘PD수첩’이 ‘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재발 방지, 아니 싹 자르기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PD수첩’의 광우병편 같은 프로그램이 재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단서는 세 개입니다. 기자저널리즘과는 달리 PD저널리즘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 세 가지가 'MB방송'으로 하여금 구조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기자저널리즘은 ‘팩트’를 주되게 말합니다. 대중에게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분절적이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인식’ 수준에서 멈춥니다. 반면에 PD저널리즘은 ‘스토리’에 팩트를 녹입니다. 대중에게 ‘프레임’을 짜주는 것이죠. 그래서 입체적이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태도’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차이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만이 아닙니다. 취재원 입장에서 보면 사전 조율 여지가 현격하게 다릅니다. 기자저널리즘에게 ‘팩트’는 목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조율(정상적 차원의) 여지가 있습니다. 기자가 어떤 ‘팩트’를 취재하는지를 알면 기사 방향을 알 수 있기에 ‘팩트’에 ‘반박 팩트’를 제시해 보도내용을 중화시킬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PD저널리즘에게 ‘팩트’는 경로에 가깝습니다. PD저널리즘에게 ‘팩트’는 스토리 구성의 요소이자 스토리 텔링의 장치입니다. 그래서 조율하기 어렵습니다. 취재원이 아무리 ‘반박 팩트’를 제시하더라도 가지만 치지 줄기를 베어내지는 못합니다.

이런 차이를 심화시키는 게 바로 취재환경입니다. 기자저널리즘은 출입처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취재원이 기자저널리즘에 접근할 연결고리가 갖춰진 것입니다. PD저널리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취재원에게 일상적 대응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일상적 대응-조율 통로가 아예 없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전통적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사람이 보면 PD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아닐지 모릅니다. ‘팩트’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6하원칙을 방법으로 아는 전통주의자에겐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내세울 주장은 아닙니다. PD저널리즘이 전통적인 저널리즘 양식이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D적 감각에 기초한 사회현상 쫓기의 필요성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근거입니다. 'MB방송'의 PD저널리즘 옥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새롭게 모색할 수 있습니다. 'MB방송'이 보기에 기존 시사 프로그램이 정말 문제라면 발전적 차원에서 좀 더 나은 시사 프로그램, 좀 더 다듬어진 시사 프로그램 모델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MB방송'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발전적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폭력적으로 청산하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프로그램이 돌출할지 몰라 아예 뿌리를 도려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폐지를 단행하고 인사권을 휘두릅니다.

방송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대안모색이 아니라 발본색원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사진=PD를 강하게 성토한 김인규 KBS 신임사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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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한다. 세상사 보기 나름이다. 그러니까 좋게 보자.

한나라당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정당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암기에 관한 한 영재급의 능력을 갖고 있다.

조윤선 대변인이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4대강) 예산 심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의원 본인들도 중앙당과 입장이 같은지 아니면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건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많이 본 장면이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연출됐던 모습의 복사판이다.

민주당이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제정의 당사자이니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응답했다.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의 존립을 걸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에 불거졌다. 한나라당 안에서 갈등과 공방이 불거졌다.

익히 들은 목소리다. ‘동아일보’가 17일자에서 보도한 내용의 재생판이다.

‘동아일보’가 조사했다. 민주당의 지역구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4대강 사업과 관련해 12명(20%)이 ‘영산강 등 수질개선이 시급한 곳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기타’ 의견을 보인 12명까지 합하면 당론과 의견이 다른 의원이 24명(4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조윤선 대변인의 촉구는 민주당의 '이간계'를 교본 삼고 ‘동아일보’의 조사결과를 공식 삼아 응용에 나선 것이다.

근데 어쩌랴. 암기력은 탁월한데 응용력이 떨어진다. 공식을 외우는 건 좋은데 대입할 문제와 아닌 문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조윤선 대변인이 대상으로 삼은 민주당 의원들이 말한다. “바닥 준설과 하천 정비가 영산강에 필요하지만 보와 둑 쌓는 공사가 핵심인 4대강 사업은 얘기가 다르다”고 한다. 돌아오는 대답이 민주당 지도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일보’ 조사 결과에는 맹점이 있다. 당론과 다른 의원 수를 ‘더블’로 올려준 ‘기타’ 의견 대부분이 ‘1조원 안팎으로 예산을 줄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면’ ‘예산안이 나오면’ ‘청와대의 개선안이 나오면’ 등의 단서를 단 것으로 민주당의 '즉각 중단' 당론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민주당 의원들의 응답이 성에 안 차더라도 본전치기는 한다. 파워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민주당의 후방을 조금은 교란시킬 수 있다. 내주는 것 하나 없이 거둬들이기만 한다면 소소하지만 이득까지 챙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은 되로 받고 말로 준다.

한나라당의 이간계 따라하기 덕분에 박근혜 전 대표는 정당성을 확보했고 활동공간을 넓히게 됐다. 이치가 그렇다. 민주당과 똑같이 남의 당 의원들에게 지도부와 다른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하는 판에 어떻게 자기 당 의원의 이견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입장을 표명할 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지도부 입장은 원안 추진이었는데. 박근혜 전 대표는 날개를 달게 됐다(참고로 '한국일보'가 한나라당 의원 147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종시 '수정 추진' 응답은 76명, '원안 또는 플러스알파 추진' 응답은 39명이었으며, '정부안이 나온뒤 입장을 밝히겠다'거나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등의 '답변 유보'가 32명이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샛문을 열려다가 자기집 뒷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남의 집 ‘피라미’를 그물에 가두려다가 자기 집 ‘월척’을 방생해 버린 것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암기만 하고 응용은 소홀히하다가 통합교과형 문제 앞에서 주저앉는 수험생들이 하는 말이다.

“그냥 찍을 걸….”

▲사진=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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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말했다. 방송권을 따려는 신문사들이 허가권을 쥔 이명박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정부 비판기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말, 그리고 정부는 종편을 따려는 신문사들의 처지를 역으로 이용해 친MB적 상황을 유도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소리를 전하면서 경고했다.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방송허가 빌미로 정치게임 말라"고. <원문 보기>

그러면서 ‘까놓고’ 말했다. 이렇게.

“방송계의 다양성 확보. 다시 말해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매체의 출현이라는 대의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주목하자. 그가 말하는 방송은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견해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방송이 아니다. ‘대변’하는 방송이다.

김대중 고문은 공적 재산인 방송을 ‘사기업’인 신문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보수, 우편향의 논조를 가진 신문도 있고, 진보, 좌파성향의 논조를 가진 신문도 있(는)” 것처럼 방송도 좌파 방송이 있으면 우파 방송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은 모든 방송이 공정성 틀을 통해 구현해야 하는 가치인데도 오히려 두 개의 편으로 방송을 가르는 기준으로 여긴다. 

김대중 고문의 기상천외한 방송관을 접하니 반문이 절로 나온다. 이런 것이다.

그럼 왜 이른바 좌파방송을 물고 늘어지는 걸까? 김대중 고문의 주장대로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방송이 정당하다면 ‘진보, 좌파 또는 비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방송’ 또한 정당한 것 아닐까? 그는 뭐라고 답할까?

‘YES’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이 방송을 공격한 주된 논리가 편향성이었으니까 ‘YES’라고 대답하면 이전의 공세는 부당한 침공이 된다. 'NO'라고 해도 곤란하다. 그렇게 답하는 순간 독선에 빠진다. 방송이 우파는 대변해도 좌파는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배째라‘ 주장과 비슷하다.

혹시 이런 걸까? 종편은 좌파 우파 대변해도 되지만 지상파는 그러면 안 된다는 주장일까? 지상파는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니까 특정 이념에 경도돼선 안 되지만 종편은 케이블을 이용하는 '사기업'이니까 특정이념을 대변해도 된다는 주장일까?

어림없다. 이런 식으로 지상파와 종편을 나누려면 다시 짜야 한다. 방송통신위가 갖고 있는 종편 허가권과 심의징계권을 내놓고 원하는 곳은 누구나 신고만 하면 종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은 자율성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달리 방법이 없다. 김대중 고문의 방송관을 논리 영역에서 해석할 방도가 없으니 그냥 이렇게 이해하자. 실수한 거라고, 무심결에 천기를 누설해 버린 것이라고 이해하자.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려는 진짜 이유를, 방송통신위가 ‘돈 있는 신문사만의 잔치판’을 여는 진짜 이유를 얼떨결에 내비친 것이라고 이해하자. 방송원리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고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자.

Posted by '토씨'


1.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희망과 대안’이란 조직에 몸을 담았으면서도, 내년 지방선거에 적극 참여하려고 하면서도 정치 안 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사실상 정치에 한 발 걸쳤으면서도 “왜 날 끌어내려 하느냐”고 뒷걸음질 치는 그를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그의 고민 지점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때마침 물었더군요. ‘풀뿌리 민주주의 희망찾기’ 대담자로 나선 그를 향해 한 시민이 요구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더군요. “서울시장 등에 직접 출마하라”고. 역시 손사래 치는 박원순 이사를 향해 다른 시민이 또 물었더군요. “모두가 당신을 원한다면 어찌할 거냐”고. 박원순 이사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정계 진출 제안에 해외로 도망갈까 생각했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정치권에 갔다 본인은 물론 그나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자산 하나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2.
잘 모릅니다. 박원순 이사의 면면을 잘 알지 못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박원순과는 달리 정치가로서의 박원순이 적합한 인물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평할 수 없습니다. 그를 향한 정계 입문 권유가 타당한지, 그가 정계에 입문한다고 해서 변화를 이끌지 평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합니다.

박원순 이사에게 ‘강권’ 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갑갑증을 확인합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기존 정치인에 대한 염증을 확인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의 이런 심경이 박원순 이사라는 매개 인물을 통해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박원순 이사가 손사래 치는 이유를 확인합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자산 하나를 잃는 경우”를 여러 번 목도한 경험을 되새깁니다. 사회 자산을 잠식하는 우리 정치의 정치풍토를 확인합니다.


3.
우리 정치는 간절하게 새 인물을 원합니다. 새 인물이 들어와 새 바람을 일으켜 주기를 갈망합니다. 우리 정치는 간단하게 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새 인물이 들어와도 어느 순간 기존 정치질서에 편입시켜 버립니다. 구질서를 깨려면 새 인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새인물은 구질서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이사 같은 개별 인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망가 몇 명이 정계에 입문한다고 해서 새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감히 전망할 수 있습니다.

세력이어야 합니다. 몇몇 명망가가 아니라 조직된 세력이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새바람의 풍속을 높일 수 있습니다.

4.
하지만 이 또한 새 모델이 아닙니다. 이전에 여러 사례가 있었습니다.

재야세력이 들어갔습니다. ‘젊은 피’로 평가받으면서 세를 이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386세력이 참여했습니다. 세대교체를 이루겠다며 열을 지어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야세력은 계파에 흡수되면서 ‘기존 정치인’의 대명사 비슷하게 돼 버렸고, 386세력은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더 이상 없습니다. 재야세력처럼, 386세력처럼 조직된 세력이 더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는 테크노크라트 시대’라고 주장하지만 테크노크라트는 조직돼 있지 않습니다. 세력이 아닙니다.

5.
어쩌면 ‘박원순의 선택’이 맞을지 모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한 그의 말에 풀뿌리 세력 양성이 포함돼 있다면 그의 선택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가 홀로 정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그가 수십의 풀뿌리 세력을 키우는 게 더 생산적일지 모릅니다.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조직된 세력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세력이 현존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재야세력이 실패했고 386세력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냥 포기할 게 아니라면, 그들의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면 주춧돌부터 세워야 합니다.

박원순 이사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다만 방도가 다른 것일지 모릅니다. 개인이 일군 ‘사회적 자산 하나’를 다수가 향유하는 ‘정치적 공동 자산’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박원순만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사진=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