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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되물을 때가 됐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쉬 묻지 않던 걸 꺼낼 때가 됐다. 이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말 완성됐는가?

불행하게도 부정의 증좌를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쉼없이 터져 나오는 사례들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조롱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눈이 충혈 되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보고 들었던 표현의 자유 문제는 거론치 않겠다. 이것 말고도 사례는 수두룩하다.

사법부의 최고 직위에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개입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촛불시위 참가자에 대한 재판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임의로 사건을 배정했고 판사들을 압박했다.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는 본론 따로 결론 따로 식의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대리투표가 자행되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탄생한 법률의 효력을 인정하는 망측한 판단을 내렸다.

입법부의 최대 정당인 한나라당은 대리투표를 저질렀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희롱했다. 야당 의원들의 심의 표결권한을 침해하면서 날치기 장면을 연출했다.

행정부에 속한 검찰은 널뛰기 수사를 벌였다. ‘노무현 수사’ 때는 이 잡듯 뒤지더니 이명박 대통령 사돈 기업 수사 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국가를 이루는 입법-사법-행정부의 실태가 이렇다. 그들 모두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조롱하고, 재판관의 독립된 양심을 침해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방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건 교정과 자정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판 개입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대법관이란 사람은 물러나지 않는다.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위배 사실이 공인됐는데도 원내1당은 야당 탓을 한다. 부실 수사의 증거가 속속 제시되는데도 검찰총장은 수사를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불가역적인 상태로 굳어지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원칙의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힘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다.

그래도 국민은 믿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고, 침해된 민생과 민권을 국가 제도를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 다수 국민의 여론을 따르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면서도 제도권을 박차고 나가 힘으로 순종을 강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시스템에 따라,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다. 국가의 민주화는 땅을 기는데 국민의 민주의식은 하늘을 난다. 국가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데 국민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갇혀있다. 

그리고 흩날린다. 아이러니 현상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길게 토해낸 한숨이 하늘과 땅 사이를 맴돈다. 

▲사진=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1만배를 하고 있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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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은 같다. 10.28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 견제 심리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 고공행진에 취해 독선과 독주 행태를 유지 또는 강화한 게 유권자의 견제 심리를 자극했다고 분석한다. 세종시, 4대강, 김제동 퇴출 등의 입증 사례도 제시한다.

전망도 같다. 10.28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래도 전패의 악몽에서 벗어나 2승은 했으니까 한나라당 지도체제 개편과 같은 대수술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청와대에서 “재보선은 언제나 여당에 불리했다. 이 정도만 해도 선전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볼 때 국정 기조를 바꿀 가능성도 낮다고 점친다.

다소 거칠지만 도출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과 전망을 기초로 내년 지방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유권자의 견제 심리는 날카로운데 청와대의 태도는 느긋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필패다.

헌데 켕긴다. 말 그대로 거칠다. 판을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따로 고려할 게 있다. 유권자의 견제 심리, 청와대의 국정 기조 외에 추가로, 반드시 살펴야 하는 요인이다. 바로 박근혜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그가 지방선거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경기 안산 상록을을 보면 가정법을 펴는 이유를 살필 수 있다.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 29.3%로 5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낮았고 전체 투표율 39%보다도 훨씬 낮았다. 그런데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후보 단일화 무산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후보를 8%포인트 차로 누르고 무난히 당선됐다.

이 수치가 증명한다. 안산 상록을이 다른 선거구에 비해 투표율이 낮았던 이유는 범야권 표가 실망했기 때문이다. 범야권 표 중 일부가 후보 단일화 무산에 실망해 기권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기권한 범야권 표보다 방관한 범한나라당 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 무산을 기회 삼아 결집할 여지가 있었는데도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런 현상은 안산 상록을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나타났고, 4.29재보선에서도 나타났다.

이 현상에 박근혜 요인을 대입해 보자. 박근혜 전 대표가 방방곡곡을 누비며 후보 지원유세를 하는 장면을 가정해 보자. 어떻게 될까?

수원 장안이 예가 될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유세장을 누볐듯이 박근혜 전 대표가 장안 지역을 샅샅이 훑었으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한나라당 후보가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당하는 현상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를 진두지휘하면, 대중적 인기를 무기 삼아 유권자의 관심을 끌면 중화시킬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를 일정 정도 상쇄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가정이다. 이 같은 상황 설정은 지금으로선 백지 위에 그리는 추상화와 같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 참여하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선결돼야 한다. 국정기조와 공천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존립’ 문제까지 거론하며 제동을 건 세종시 문제를 비롯해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청와대가 맘을 바꿔야 하고, 공천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헌데 여의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가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추진 현안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묵묵히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다시 내보였다. 경남 양산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개운치 않은 모습을 보여 탈락자의 불복을 야기했다. 선거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경도된 공천이란 비판을 자초했다.

이렇게 보면 10.28재보선 결과는 악성이다. 2대3으로 져서 악성인 게 아니라, 어중간하게 져서 악성이다. 청와대의 국정기조 변화를 강제할 만큼의 선거결과가 아니어서 악성이고, 지도체제와 당 운영방식 개편을 끌어낼 만큼의 선거결과가 아니어서 악성이다.

어쩌면 이렇게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4.29재보선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10.28재보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성적, 즉 0대5 전패의 수모를 당했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측도 꿈쩍하지 않는다. 10.28재보선 뚜껑이 열리자마자 다시 2월 조기 전대론이 고개를 드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지금의 지도체제를 바꾸는 것을 마뜩치 않아 한다.

청와대나 박근혜 전 대표 모두 무소의 뿔처럼 혼자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 추가하자. 박근혜 요인과 함께 살펴야 할 제2의 관전 포인트다.

경남 양산에서 송인배 민주당 후보가 보인 뒷심은 무서웠다. 10.28재보선 후보 중 최대 거물인 박희태 후보를 턱밑까지 따라잡는 저력을 보였다.

동력은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의 억울한 죽음’을 부각시키며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했고, 선거 구도를 이명박 대 노무현으로 짠 게 비결이었다.

그럼 어떨까?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번처럼 선전할 수 있을까? ‘미완의 승리’를 ‘영광의 승리’로 상승시킬 수 있을까? 관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무현’이다. 내년 지방선거 목전에서 맞게 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가 변수가 될 수 있다. 1주기의 추모 열기에 따라 유권자의 감성이 달라지고 친노 세력의 득표율이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역시 박근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 전면 참여하느냐 여부에 따라 친노 세력이 심혈을 기울이는 영남지역의 판세가 달라진다. 박근혜 전 대표가 뛰어들어 이명박 대 노무현의 대립구도를 박근혜 대 노무현으로 돌리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가 이명박 정부 견제 심리와 접목되는 현상을 일정 정도 차단한다.

▲사진=한나라당 지도부가 10.28재보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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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나 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외고 문제를 당과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라”며 “청와대가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단다.

당연한 지시다. 상황론으로 봐도 그렇고, 원칙론으로 봐도 그렇다.

외고 문제를 놓고 당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 일각의 의지는 강력한데 교과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외고 폐지를 주창하는데 교과부는 외고 존속 또는 국제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제탑 역할을 자임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청와대가 져야 한다는 원칙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견제’는 타당하지 않다.

이 신문이 보도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을 ‘드라이’하게 전하면서 그에 대한 지적을 ‘꼼곰하게’ 처리했다. “청와대의 개입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며 “불과 2년 전 외고 폐지 정책에 반대했고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엘리트 교육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정책의 근본 기조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도 나온다”고 했다. “하나의 친서민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한다. ‘조선일보’의 지적을, 조중동의 일관된 ‘외고 폐지 반대’ 논조를 주목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외고 문제를 가속 페달 삼아 친서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의 다음번 이슈 중 하나로 30-40대 학부모의 관심이 많은 외고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헌데 보수 세력은 마뜩치 않다. ‘조선일보’가 전한 반대론의 구절들, 즉 “정책의 근본 기조”를 거론하고 “친서민 포퓰리즘”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외고 폐지를 정체성의 문제로 본다. 보수 정권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중과 영합하는 배신 행위로 간주한다.

보수 세력의 시각이 이렇다면 그들이 펼칠 행동은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당과 교과부를 오가며 전개된 지엽적 논란이었기에 점잖게 대응했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논란에 종지부를 찌고 정책방향을 결정하면, 그리고 그 방향이 외고 폐지면 날선 공격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곤란해진다. 이렇게 '집토끼‘가 가출해버리면 ‘친서민’을 화승총 삼아 벌이던 ‘산토끼 사냥’이 공염불이 된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된다.

물론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양다리를 걸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산토끼’도 잡고 ‘집토끼’도 다독이는 양면 전략, 즉 외고를 존속시키되 입시제도만 손보는 식의 방안, 또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식의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22일 전국 5490명을 대상으로 ARS조사한 결과를 봐도 여지는 있다. 응답자의 55.5%가 외고 전환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전환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특성화고(28.0%)-자율형ㆍ자립형사립고(23.3%)-일반 인문계고(22.2%)-국제고(21.6%)로 의견이 갈렸다. 보기 문항에 일부 문제(자율형 사립고는 추첨으로, 자립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도 한묶음으로 처리한 것)가 있지만 아무튼 갈렸다.

하지만 양다리 걸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뾰족수라고 생각했던 게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막아버렸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그런 우회로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렸다. 외고 해법의 핵심은 학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쳐놓은 이 바리케이드를 타고 넘는다 해도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야당과 서민의 극렬한 반발이다. 외고 폐지의 대안은 일반고로의 전환이라면서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추첨 선발’을 최소한의 절충책으로 받아들여온 야당과 서민이 이명박 정부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외고 문제만이 아니라 친서민 정책 전반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여건이 그렇게 조성돼 있다. 상징성이 크고 민감성이 큰 외고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그리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외고의 핵심 문제로 사교육을 부각시킨 순간 여건은 그렇게 조성됐다. 외고문제는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재는 가장 유효한 잣대가 돼 버렸다.

어쩔 것인가? 청와대는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갈림길에 선 청와대의 선택이 궁금하다.

 ▲사진=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27일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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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었다.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의 칼럼을 밑줄 쳐가며 정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랬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 걸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입각해 비판한 보수 신문의 사설에 대해 “옳은 지적”이라고 평한 뒤에 ‘한 발 더’ 내디뎠다.

뭔가 대단한 논리를 내놓는가 싶었다. ‘대기자’라는 직함에 걸맞게 장삼이사는 감히 생각지 못할 논리와 가치를 제시하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그가 “한 발 더 나아가” 내놓은 건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애국이란 단어에 태생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진보주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자기 나라보다 노동계급을 중요시한 공산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고 했다.

말하지 않으련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소리를 낸 게 아니라 ‘한 발 더 물러서’ 낡은 소리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말하지 않으련다. 그가 “옳은 지적”이라고 평가한 ‘중앙일보’의 사설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대신 다른 걸 짚으련다. 대기자의 칼럼에 깔려있는 자가당착적 요소다.


문창극 대기자가 말했다. 유신시절에는 애국심이 독재정권의 강화에 이용되었다고, 그래서 반발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요즘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태극기가 펄럭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신의 이런 감정(또는 양심)을 술회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말했다.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 안에서 해야 한다”고, “그것은 우리의 고난의 역사, 굴곡의 역사를 다 인정하는 동시에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에 대해 자가당착이라고 평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문제 삼는 민중의례는 기실 다른 게 아니다. 애국가 대신 합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노래다. 민주열사에 대해 묵념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문창극 대기자의 감정을 ‘반발’에서 ‘눈물’로 변하도록 밑돌을 놓은 사람들을 기리는 행위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다. 왜 이걸 문제 삼는가. 왜 이걸 ‘애국’의 맞은편에, 반대가치로 설정하는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문창극 대기자가 지적했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라면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든 않든, 애국가를 부르든 않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핍박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그런데 왜 힐난하지 않는가. 행정안전부가 민중의례를 금지해 “개인의 선택”을 침범했는데 왜 비판하지 않는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는데 왜 문제 삼지 않는가.

괜히 따라왔다. 그가 디딘 발걸음을 좇았더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황량하다. 논리가 높이뛰기를 하고 주장이 불규칙운동을 하는, 혼돈의 땅이다.

▲캡쳐 = ‘중앙일보’ 오늘자 ‘문창극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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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안산 상록을에서의 후보 단일화 무산 배경도 마찬가지다. 이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김영환 민주당 후보와 임종인 무소속 후보의 지지율이 박빙이었다면 어땠을까?

민주당이 쉬 뻣대지도, 진보정당이 쉬 거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단순지지도 조사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자고 강짜 놓지도, 진보정당이 그럼 관두라고 배짱부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잘못하면 독박 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다면, 잘 하면 대박 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면 그렇게 쉬 쪽박을 깨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지지율 격차에 있었다. 민주당이 공공연히 ‘단일화 안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설레발치는 판세가 문제였다.

민주당은 의지를 가다듬을 이유가 없었다. 단일화해도 이기고, 안 해도 이기는 판에서 굳이 밑지는 장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임종인 후보의 단일화 협상 타결 누설을 빌미로 삼았고, 단순지지도 조사를 무기로 삼았다. 진보정당의 양보를 끌어내면 좋고, 안 돼도 책임을 떠넘기는 명분만 확보하면 됐다.

진보정당은 힘이 달렸다. 두 진보정당에다가 창조한국당까지 가세했는데도 민주당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판에서 마냥 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패키지 딜을 제안했고, 적합도 조사를 방책으로 삼았다. 민주당의 양보를 끌어내면 좋고, 안 돼도 체급을 올리는 기회를 확보하면 됐다.

현실이 이렇다. 한쪽은 의지가 없고, 다른 쪽은 힘이 없다. 그래서 한쪽은 현실을 내세우고, 다른 쪽은 명분을 내세운다. ‘반MB연대’라는 거창한 구호 뒤에 가려진 현실은 이렇게 앙상하고 강퍅하다. 


인정하자. 볼썽사납지만 이게 정치 현실이라고 인정하자. 이런 강퍅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실천적 방안을 찾자. 동상이몽을 동상동몽으로 만들 방책을 찾자. 그게 뭘까?

이런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다. 역시 아주 간단한 질문이다.

시민사회세력이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그렇게 쉽게 쪽박을 깨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민사회세력이 표를 통한 ‘응징’을 이끌어낼 만큼 대중 장악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쉬 갈라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민사회세력이 80년대의 재야세력처럼 국민 속에서 생동하고 있었다면 제도정당이 그렇게 쉬 제 봇짐을 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미약한 힘에 있었다. 몇몇 명망가의 ‘이름값’이 전부인 그들의 처지가 문제였다. 그 ‘이름값’이 알 만한 사람만 아는 ‘한정상품’이란 게 문제였다.

‘반MB세력’은 안산 상록을에서 ‘홀딱쇼’를 선보였다. 힘도 없으면서 지리멸렬한 모습까지 내보였다. ‘희망’을 가꾸자면서 최소한의, 소박한 ‘희망’마저 일구지 못했다. ‘대안’을 마련하자면서 최소한의, 소박한 ‘대안’마저 밀어붙이지 못했다.

처지가 이처럼 궁색한데도 입으로는 장밋빛 그림을 그린다. 작은 판조차 추스르지 못하면서 큰 판을 운위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제적 연대’를 이루자며 미리 선거연대 논의기구를 꾸리자고 한다. 후보 단일화가 파탄 난 이유가 논의가 부족해서도, 시간이 모자라서도 아닌데 ‘선제’를 읊조리고 ‘논의기구’를 제안한다. 다른 데가 아니라 강짜 부린 데서 이렇게 주장한다.

‘홀딱쇼’로도 모자라 ‘생쇼’를 펼치려고 하는 것이다.

▲사진=경기 안산 상록을 지역의 선거 벽보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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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용산’ 농성자 9명에게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적게는 징역 5년, 많게는 징역 8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면서 밝혔습니다. 구형에 앞서 1시간여 동안 준엄한 목소리로 의견을 밝혔습니다. 농성자들의 “극렬한 투쟁”과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대비한 후 꾸짖었습니다. “폭력으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했고, “불법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보다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농성을 한 피고인들을 엄단하지 않으면 제2의 용산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 달지 않겠습니다. 검찰의 유죄 의견이, 검찰의 구형량이 적합하고 적정한 것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건 법원의 몫입니다.

다른 걸 말하려고 합니다. 검찰의 구형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충실하게 전합니다. 결심공판이 열리면 검찰의 유죄 의견과 구형량을 상세히 전합니다. 피고인측의 항변을 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액세서리입니다. 검찰을 주어로 삼은 문장을 길게 배치한 후 끄트머리에 간략하게 몇 줄 걸치기 일쑤입니다. 용산 참사와 같이 국민적 관심과 논란이 큰 사안의 경우엔 덜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엔 심합니다. 검찰은 주체이고 피고는 객체입니다.

타당한 보도태도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에 가중치를 두는 편향된 보도태도입니다.

검찰의 구형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객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유죄 의견을 밝히는 것입니다. 검찰이 구형을 하면서 덧붙이는 의견 또한 공소 취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고인을 몰아치고 구형량을 높이는 게(법원 선고 형량에 비해) 일반적입니다. 간단히 말해 검찰의 구형은 공소 제기에 덧붙이는 ‘일방적인’ 행위입니다.

검찰의 이런 일방적인 행위를 도드라지게 보도하면 피고인은 이중으로 피해를 입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 입장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피해를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재판에 넘겨지는 순간 손가락질이 시작되는 우리 사회 풍토에서 검찰 구형 보도는 마치 법적인 판단이 이뤄진 것과 같은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검증된 사실처럼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구형이 마치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뉴스가 나왔습니다. 검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한 1심 무죄 선고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2007년 2.6%에서 2008년 3.2%, 올해 7월까지 4%로 계속 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더 있습니다. 대검 중수부가 지난해 기소한 사람에 대한 1심 무죄율이 27.2%로 일반사건 평균 무죄율 1.5%보다 18배 높았고, 2심과 3심 무죄율은 32%, 67%를 기록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이 수치가 말해줍니다. 복장이 터지는데도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태산명동에 서일필인가? 판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정부가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단다. 교과부가 다음 주 외부기관에 의뢰할 ‘외고 개편 연구용역’의 초기 구상 핵심내용이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로 외고가 자율형 사립고가 아니라 국제고로 전환된다면 공염불이 된다. 외고발 사교육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애초 구상이 무너져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중학교 내신 상위 50% 안에서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반면에 국제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내신 반영은 기본이고 영어시험이 추가된다.

여권 관계자는 입학 전형이 내신 위주로 바뀌어 사교육비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고, 영어 시험도 외고와는 달리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돼 사교육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다. 현실을 호도하는 소리에 가깝다.


사교육 논란의 핵심 문제는 출제 수준이 아니라 시험 유무다. 어떤 형태든 시험이 유지되는 한 사교육에 의지한 경쟁은 근절되지 않는다. 시험이 상대평가인 한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입학할 수 있기에 1점을 위한 과다 투자는 불가피하다. 내신이 예외일 수 없고 영어가 예외일 수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국제고에서 영어 시험을 치르는 건 교육당국이 보증한 ‘자율권’이다. 그래서 맘대로 할 수 있다. 지금은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한다지만 언제든 출제 수준을 높일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등이 추진하는 ‘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 방안이 반쪽짜리인데도 공감을 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재생되고 변이될 여지를 차단하려 한 그 취지에 공감한 것이다.

헌데 교육당국은 이 ‘최소치’를 허물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을 짐짓 모른 체 하면서 고름이 번지는 환부에 파스를 붙이려고 한다.

평가는 이 정도로 갈음하고 시선을 돌리자. 추이다.

금은 이미 갔다. 외고 문제를 놓고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균열상이 분명히 드러났다. 보수정당 의원들은 외고를 아예 없애자 하고, 보수언론은 외고를 유지하자 하고, 보수정부는 국제고로 대충 ‘퉁’ 치려고 한다. 어떻게 될까?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이 균열상이 어떤 지각 변동을 야기할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다. 친서민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 인사들은 교육문제를 운위할 때마다 ‘친서민’을 앞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교육비 부담이 서민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인 만큼 총리실이 중심이 돼서 좀 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운찬 총리에게 주문한 바 있고, 정두언 의원 역시 “외고의 자율형 사립고 전환은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서민을 따뜻하게 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가받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그 때 그 발언에 진정성이 담겼었던 것인지, 구현 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될 것이다. 외고의 향후 진로에 따라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지폐의 부피가 달라지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서민이니까.

▲캡쳐=오늘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