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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와 보이지 않았다. 금배지를 단 최문순 의원의 모습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었다. 공영방송 MBC의 사장을 지낸 그가 휴지기를 거치지도 않고 곧장 특정 정파에 몸을 싣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려를 씻어낼 수 없었다. 그의 개인적인 선택이 결국은 공영방송 MBC와 그의 후배 전체에게 짐이 될 것이란 걱정을 덜어낼 수 없었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서, 차장 직급에 머물던 그가 일약 사장직에 오른 것을 빌미로 ‘MBC=노영방송’이라고 욕하던 사람들에게 그의 정계 입문은 또 하나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근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눈에 힘을 줬다. 그의 개인적인 행보가 언론계 전체에 어떤 발자국을 남길지를 예의주시했다. 정연주 KBS 사장 해임·YTN 낙하산 파동·미네르바 구속·MBC ‘PD수첩’ 사법처리·미디어법 강행처리 등등에 대해 정열적으로 대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눈에 심은 쌍심지를 완전히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풀어야겠다. 그에게 던졌던 차가운 시선을, 그 시선에 심었던 쌍심지를 거둬야겠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는 실패를 자인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다음날, 민주당 의원 가운데 맨 먼저 의원직 사퇴서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이유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언론계 비례대표로 온" 자신이 제일 먼저 책임을 져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각오를 다졌다. 자신은 정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운동가가 정치인보다 더 편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역시 의원직을 사퇴한 천정배 의원과 함께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을 개시한다고 했다.

헤아릴 수 있다.

자신을 “언론계 비례대표”로 칭한 그의 말에서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막아내려 했던 '의지'를 헤아릴 수 있다. 정치와 국민의 “괴리”를 언급한 그의 말에서 정치판의 생리에 막혀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회한’을 헤아릴 수 있다. “운동가”와 “행동”을 다짐하는 그의 말에서 실패 끝에 다진 ‘각오’를 헤아릴 수 있다.

그럼 된 것이다. 실패를 합리화하지도 않고, 실패에 무릎 꿇지도 않으면 된 것이다.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근데 왜일까? ‘운동가 최문순’의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게 마땅한데도 쉬 그럴 수가 없다. 그의 진정성과 그의 각오를 의심하지 않는데도 쉬 그럴 수가 없다.

그가 남긴 한 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그가 말했다. “국민들은 (의원들이 하는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다 안다”고 했다. “정치가 국민들과 많이 괴리돼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엄존하고 있다. 그가 ‘정치인 최문순’의 실패를 자인하도록 만든 요인, 그가 ‘운동가 최문순’의 길을 선택하도록 만든 요인이 엄존하고 있다.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민주당 안에 엄존해 있다.

국민과 정치를 괴리시키는 이 요인이 극복되지 않는 한 ‘운동가 최문순’의 각오가 아무리 굳건해도, ‘운동가 최문순’의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이 아무리 투철해도 그의 선택과 그의 싸움은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사진 출처=최문순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시비 걸 생각이 없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귀족 취미인 승마와 요트를 즐겼다고 하지만 뭐라 할 생각이 없다.

골프는 되고 승마와 요트는 안 된다고 우길 근거가 없다. 게다가 승마의 경우 회당 1만원짜리 쿠폰 20장을 구입해 즐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언뜻 봐선 골프보다 싸게 든 건 같은데 희소한 취미라고 해서 무조건 ‘귀족 취미’로 몰아갈 수는 없다. 요트도 그렇다. 일주일에 6만원을 내고 5주 동안 배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히려 다른 게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요트를 즐긴 전력을 문제 삼았던 어느 당의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다. 김준규 후보자에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였던 것과 같은 추상같은 태도를 보일지가 궁금하다. .

승마와 요트는 그냥 넘어가자. 김준규 후보자측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굳이 문제 삼지 말자.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시비 걸기 이전에 이해하기가 힘들다.

미스코리아 대전·충남지역 예선 심사위원장을 맡았단다. 미스코리아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악성 루머에 대해 김준규 후보자측이 이렇게 해명했단다.

이해할 수 없다. 검사와 미스코리아의 밀접성을 찾기 어렵다. 범죄자를 가리는 눈을 가진 검사가 심미안까지 갖고 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이런 걸까? 미스코리아는 미모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겸비한 재원이라고 하니까, 김준규 후보자는 미모가 아니라 지성을 가리기 위해 심사위원석에 앉았던 걸까? 이렇게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지성을 판별하는 데는 육법전서보다 인문학이 더 유용하다는 게 상식 아닌가.

역시 아닌 모양이다. 지성을 가리기 위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건 아닌 모양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관계자가 말했단다. “심사를 둘러싼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김준규 후보자를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한 것”이라고 설명했단다.

이제야 이해할 만하다. 김준규 후보자가 심사위원석에 앉은 이유는 비리 예비단속 차원이었다. 심사 비리가 발붙일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근데 왜일까? 이해는 하겠는데 납득은 못 하겠다.


도대체 미스코리아 심사 비리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그리고 검사장이 얼마나 한가하기에 김준규 후보자가 몸소 나서야 했을까? 기승을 부리는 민생범죄와 강력범죄는 부하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고검장이 직접 챙겨야 할만큼 중한 것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경고했던 걸까? 심사위원석에 앉아 심사 비리를 벌이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경고했던 걸까? 심사 비리 여부를 가리는 사법적 판단잣대를 제시했던 걸까? 알 수가 없다.

그만이 아니었을까? 심사 비리는 대전·충남지역 예선 뿐 아니라 모든 지역 예선에서 공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심지어 본선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니까 다른 검사장들도 예선과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까? 검사장이 바쁘면 지방경찰청장이라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까?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으니 이 점만 환기하고 마무리하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성 상품화 논란이 일면서 지상파TV가 중계를 끊었던 행사다. 그런 행사에 공직자 신분인 김준규 후보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게 적절했을까? 

▲사진=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케다 선수가 한국인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FC서울과의 친선경기 때 원숭이 흉내 내는 골 세리머니로 한국인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양인을 비하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분노합니다. 다수의 한국인이 마케다 선수의 이런 행위에 분노합니다. 백인의 고질적인 유색인종 혐오증이 노출된 것으로 판단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남의 집 안방에 와서 집주인의 피부색과 생김새를 조롱한 것으로 보면서 분노합니다.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정말 마케다 선수의 골 세리머니에 인종차별 메시지가 담겼었다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분노하고 규탄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2.
경기도 부천중부경찰서가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와 한국인 박모 씨를 불구속 입건해 오늘 부천지청에 송치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모욕한 혐의가 있다고 합니다.

경위가 이렇습니다. 지난 10일 밤 9시 15분경 후세인 씨가 한국인 여성 한모 씨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에 동승한 박모 씨가 후세인 씨를 향해 "냄새 나. 더러워. 너 아랍인이지?"라고 모욕을 줬고, 동행한 한씨에게도 "새까만 ○○와 같이 있으니 좋으냐?" "조선○ 맞느냐?"고 말했습니다. 모욕을 듣다 못한 후세인 씨와 한씨가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박씨도 후세인 씨를 맞고소했습니다. 후세인 씨가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마케다 선수에게 분노한 것만큼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같은 동양인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늘어놓은 것에 대해 고개 숙이는 게 마땅합니다.

3.
물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맨유 구단이 해명했습니다. 마케다 선수는 인종차별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골 세리머니는 경기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펼친 단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후세인 씨가 박씨를 어떻게 모욕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경찰은 후세인 씨와 박씨가 모두 상대방을 모욕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데 신문 기사에선 한쪽의 모욕만 서술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판명나지 않은, 반쪽짜리이지만 그래도 두 뉴스가 우리 자신을 둘러볼 계기를 부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4.
어린 시절 동네에 또래가 한명 살았습니다. 키가 우리보다 한 뼘쯤 컸고 피부가 유난히 뽀얐던 아이였습니다.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혼혈아, 백인 혼혈아였습니다(혼혈이란 표현에도 인종차별적 시각이 담겨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체용어가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아이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해도, 도토리를 주우러 갈 때도 그 애는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멀리 했습니다. '튀기'라고 놀리며 멀리했습니다. 바다 건너 선진국, 백인의 나라를 동경하면서도 한국말 쓰는 백인의 아들은 멀리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그 아이를 '튀기'라고 손가락질 했으니까요. 우리들이 그 애를 놀려도 말리는 어른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뭐였는지, 그 아이가 언제 전학을 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그 아이의 생김새와, 어느 날 갑자기 '전학갔다'고 무심하게 말한 선생님의 음성뿐입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신상을 알려 하지 않았고, 그 아이는 자신의 행적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겉돌다가 스쳐지나갔습니다.

5.
저만의 기억은 아닐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 이야기이니까요.

어느 유명 탤런트가 TV에 나와 '나의 아버지는 백인'이라고 고백하며 눈물 흘리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유명세를 얻은 가수가 어린 시절 흑인 혼혈로 겪어야 했던 갖가지 설움을 털어놓으며 눈물짓던 모습도 선연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눈물에 설움과 핍박의 기억을 담았습니다. 백인 혼혈이건 흑인 혼혈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그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6.
지나간 기억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 되는 현실입니다.

이주노동자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불법 체류자 또한 말하지 않겠습니다. 형편이 가장 열악한 이들은 아예 거론대상에서 빼겠습니다. 이들보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이들과는 달리 법적으로 한국인임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현실만 얘기하겠습니다.

다문화 가정이 15만 가구를 헤아립니다. 초․중․고교에 진학한 다문화 가정 자녀가 2008년 4월 기준으로 1만 8700명을 돌파했습니다. 2006년에 7900여명, 2007년에 1만 3400여명이었으니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다문화 가정 자녀는 2007년 2만 5천여명에서 2008년 5만 8천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농어촌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성행하기 시작한 게 10년 남짓입니다.그러니까 지금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국제결혼 1세대의 자녀들에 해당합니다.

이 1세대 자녀들이 다른 피부색, 다른 생김새에 주눅 들고, 상대적으로 어눌한 한국 말투에 힘들어 합니다. 자신에게 힘들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어 하고, 자신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에 힘들어 합니다.

7.
끔찍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문화 가정 자녀 1세대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다문화 가정 자녀 2세대, 3세대가 학교에 가고 청소년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한국인의 인종차별 의식이 깨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대한민국은 갈등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남북 갈등에 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 계층 갈등이 뒤섞여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인종갈등'이 보태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주로 주한미군의 자녀였던 혼혈의 원조세대가 극소수의 덫에 걸려 구석에서 신음할 때는 덮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숨기고 쉬쉬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덕에 한국의 두터운 인종차별 의식도 감출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가능하지 않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 생김새가 다른 한국인은 상대적 다수가 되고 있습니다. 숨길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엄연한 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구석에서 숨죽여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합니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하는 속도는 더디고,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누그러지는 속도 또한 느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이란 표현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쓰지 말라고 해도, 국방부 또한 혼혈에게 병영 문을 걸어잠그던 제도를 일부나마 부수고 있는데도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귀를 닫을 수 없습니다. 후세인 씨가 경찰에게 남겼다는 한 마디를 못 들은 체 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랬답니다. “인도 등 남아시아인들이 더럽고 냄새난다는 한국인들의 편견을 고쳐야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Posted by '토씨'

민주당에게 물어야 겠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방송법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결정을 질질 끌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없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정세균 대표가 말했다. 자신들은 그런 경우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28일)에서 “헌재가 쉽게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27일)에서 “헌재 재판이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확신”이라고 했다.

정세균 대표가 이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의외로 단순하다. “대한민국에 헌재 재판관만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헌법학자, 법조인들도 있으니까”가 근거다.

쉬 부정할 수 없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근거이지만 그래도 켕긴다. 듣도보도 못한 ‘관습헌법’을 들고나왔던 헌재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에 정세균 대표의 “확신”이 ‘근거가 부족한 낙관’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그래도 뭐라 할 수 없다. 정세균 대표가 그런 “확신”에 기대어 두손 두발 다 놓고 있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원외투쟁을 병행하겠다고, 국민과의 ‘소통 투쟁’을 통해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근데 묘하다. 국민과 함께 벌이겠다는 무효화 투쟁을 ‘동원’이 아닌 ‘소통’으로 한정했다. “옛날엔 대규모로 동원하는 동원투쟁을 했지만 이번엔 방향을 바꾸자”며 “우리가 국민들을 찾아가서, 거기서 국민과 소통하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맞다. 국민은 대상이 아니니까, 나오라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들어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니까 ‘동원’ 따위의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표현 또한 적절하지 않다. 정세균 대표가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70%가 (미디어법의) 내용도 옳지 않고 (미디어법 처리) 과정도 옳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고, “국민들이 진상을 알기 때문에 옳은 판단을 해줄 것으로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판을 이렇게 읽고 있다면 정세균 대표가, 민주당이 잡아야 하는 무효화 투쟁의 축은 분산이 아니라 결집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간헐적인' 홍보전에 주력하겠다고 한다. 핀트를 잘못 맞추면서 무효화 투쟁의 수위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뭐라 하지 말자. 민주당에겐 최후의 카드가 남아있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작성해 정세균 대표에게 맡긴 의원직 사퇴서가 있다. 권한쟁의심판을 신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제출을 유보하고 있는 의원직 사퇴서가 있다.

근데 덧없다. 이 카드는 최후의 카드가 아니라 뒷북 카드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흔드는 손 같은 카드다. 헌재가 청구를 기각한 후에 제출해봤자 판을 되돌릴 수 없는 맥 빠진 카드다.

게다가 실제로 제출할 것 같지도 않다. 정세균 대표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에 청구 당사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자신이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눈가림용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김형오 의장이 의원직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순순히 의원직 사퇴 건을 의결해줄 리도 만무하다.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다고 해서 권한쟁의심판 청구인 자격을 당장 잃는 게 아닌데도 정세균 대표는, 민주당은 뭐가 무서운지 가장 약한 수를 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세균 대표가 한 말이 더 있다. “경거망동할 생각이 없다”며 의원직 총사퇴는 “(현안문제 뿐 아니라)중장기적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심각한 변화가 올 때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정세균 대표의 이 말대로라면 의원직 총사퇴는 영영 불가능하다. 그가 설정한 “중장기적 과제”가 하루아침에 풀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수호, 서민경제 회생, 남북문제 개선이다. 

다르게 볼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재 결정을 기다리자”는 한나라당의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팔짱 끼고 있는 것과 투쟁 시늉을 내는 것 정도의 차이다.

부족하다. 민주당은 2%, 아니 20%가 부족하다. 전략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지 또한 부족하다.

▲사진=민주당이 지난 25일 서울역광장에서 다른 야당·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언론악법 원천무효 규탄대회를 열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어긋났다. 본과 말, 주요와 부차를 뒤집어버렸다.

그가 그랬다. KBS와의 특별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제20차 라디오연설’에서 미디어법을 언급하면서 그랬다. 방송은 장악될 수 없다고 했고, 미디어산업 선진화가 긴요하다고 했다.

늘 듣던 얘기였다. 정부가 강조했고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얘기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얘기였다. 그래서 식상했다.

정작 듣고 싶었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얘기는 미디어법 개정 취지가 아니라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국회의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고 끊었다.

대통령의 말이 본말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청난 논란과 극심한 갈등을 야기한 게 바로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정치권을 일순간 마비상태로 몰아넣은 게 바로 미디어법 강행 처리였다. (백 번 양보해 미디어법 개정 취지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 취지를 갉아먹은 게 바로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이었다.

말해야 했다. 국정을 최종 책임 지는 대통령이라면 국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법률안 공포권과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입장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좋게 해석할 여지는 없다.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된 상태이니까, 헌법재판소가 심리할 테니까, 대통령으로서 심리에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해서는 안 되니까 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헤아리고자 했다면 이런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말을) 하지는 않지만, 너무 늦으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말은 하면 안 됐다. 그렇게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우회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선 안 됐다. 헌재의 심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언급을 하면 안 됐다. 하지만 했다. 하지 않겠다면서 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익히 짐작했던 일이다. 청와대가 미디어법의 관전자가 아니라 지휘자에 가까웠다는 일반적 분석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은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KBS는 다르다. 놀랍고 신기하다.


특별대담에 나선 KBS가 물었다. 미디어법의 처리 절차를 물은 게 아니라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만, 야당에서는 언론장악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회에 대통령께서 갖고 계신 우리 언론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놀랍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이 짧은 질문에 녹아있다. 언론이라면, 시의성에 목메는 언론이라면 ‘구문’은 뒤로 미루고 ‘신문’을 앞세우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론이라면,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라면 ‘총론’의 밋밋함을 뒤로 미루고 ‘각론’의 날을 벼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삼 확인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본말전도 발언은 KBS의 본말전도 질문에 따른 것이었다. 미디어법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 논란이 '있지만' 대놓고, 각을 세워 묻지 않음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말하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사진=라디오연설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새삼 발견합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전하는 뉴스 밑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확인합니다. 재투표와 대리투표 실상을 전하는 화면이 또렷한데도 해석의 문제로 몰고가는 한나라당의 태도를 술안주 삼는 사람들을 보면서 되새깁니다.

답답해 합니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 하고 힘겨워 합니다.

새삼 느낍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이중성에 '혹시나'와 '역시나'를 교차시키는 국민의 마음을 읽으면서 새삼 느낍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총사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민의 시선을 살피면서 새삼 느낍니다.

잡고 싶어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합니다.

힘겨워 합니다. 촛불을 들어도, 향불을 피워도, 시국선언을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힘겨워 합니다. 기막혀 합니다. 일보 후퇴는 해도 그것을 이보 독주를 위한 몸풀기쯤으로 여기는 정부를 보면서 답답해 합니다.

멀리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천성관 파동이 증명합니다. 향불이 피워올랐을 때 한나라당은 국정쇄신을 주문했고, 그 핵심 과제로 인적쇄신을 지목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근원적 처방을 운위했고, 중도통합과 친서민을 표방했습니다. 이렇게 군불을 때운 다음에 내놓은 첫작품이 '천성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이없어 했고 분노했습니다.

천성관 파동이 커질 기미를 보이자 지체없이 낙마시켰습니다. 평소의 MB 인사스타일과는 달리 재빨리, 전폭적으로 국민의 비판 여론을 수용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나섰습니다. 재투표와 대리투표의 블랙 코미디가 연출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단숨에 밀어붙였습니다.

국민들이 답답해하고 힘겨워 하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소하고 비판하고 요구해도 변하지 않는 위정자, 변하지 않는 정치집단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씻지 못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눈을 돌렸고,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하면서 민주당을 바라봅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변모시킬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낍니다. 민심의 저류가 용솟음 치지 못하면 고입니다. 고이면서 썩습니다. 정치적 허무주의와 패배주의가 민심을 휘감게 됩니다. 미련을 버리는 방법으로 외면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정치적 허무주의가 유포되고, 이렇게 탈정치화가 가속되면 악순환에 빠집니다. 민심이 답답해하는 정치를 바꿀 동력을 잃게 되고, 답답해하고 힘겨워 하는 마음은 각질이 돼 버립니다. 영원히 침잠하는 건 없다고, 침잠하면 할수록 용솟음 치는 세기가 커진다고 굳게 믿지만 과정의 인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절실합니다. 작은 성취가 절실할 때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이 생동하는 모습을 실증할 수 있는, 작지만 귀중한 사례가 절실할 때입니다.

그것이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의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수용'이든, 아니면 더 나아가 '미디어법 재개정'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 스스로, 국민 힘으로 작지만 근본적인 성취를 이뤄냈음을 실감할 사례입니다.

Posted by '토씨'

‘올 오어 나싱 게임’은 없다. 강원랜드 카지노엔 있지만 여의도 정치판에는 없다. 그런 단순무식한 게임은 정치판에선 성립되지 않는다.

미디어법만 해도 그렇다. 8개월간의 기나긴 갈등과정을 통해 드러낼 건 모두 드러냈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안기는 대가로 ‘옷벗기’를 요구했고, 앞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뒷문을 잠갔다.

하나 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통합노선’의 실체를 드러냈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뇌’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 익히 알고 있거나,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새로 발견된 사례, 결코 놓칠 수 없는 사례들은 따로 있다.


■ 박근혜의 정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위상은 당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충심을 다 바치는 당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 역할을 하는 건 여권 내 지분싸움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그는 주목받았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이자 지분싸움을 넘어 정책싸움까지 벌이는 것인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서는 것인지, 세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난장판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을 일방 처리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대신 여야 난투극이 벌어지는데도, 고등수학은 차치하고 산수만 익혀도 한나라당의 여론독과점 규제제도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그는 눈을 감았고, 그 계파 의원들은 찬성 버튼을 눌렀다.

더불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가 세간의 평가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가 아무리 ‘여당 속의 야당’의 길을 걸으려 해도 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의 힘은 계파의 결속을 우려하고 보수 지지층의 비난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계파 의원들이 흔들렸다. 미디어법에 대해 이명박계와 전혀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보폭을 제한해버렸다. 보수 지지층이 반발했다. 이유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미디어법을 흔들고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그의 행보를 비난함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산토끼’ 사냥을 멈추고 ‘집토끼’ 건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조중동의 실체
각인됐다. 조중동의 위상이 언론기관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언론기관을 넘어 권력기관화 돼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다. 그들은 정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압도하는 막강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최대 명분으로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이 허구라는 사실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을 기화로 또렷이 밝혀졌는데도 미디어법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신방 겸영을 허용하면 혜택을 보는 언론사가 조중동과 한두 개 경제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되는데도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만사 제쳐두고 미디어법 처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달리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국민의 70%가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데도 일부 극소수 언론사를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처사를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의식하고 있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청와대와 한나라당마저 의식하고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조중동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더불어 달라졌다. 조중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언론기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믿고 성원해줘야 하는 ‘파수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반대다. 권력집단까지 쉬 움직이는 절대권력으로, ‘선출된 권력’보다 더 위에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조중동을 바라본다. 그들이 이미 가장 막강 정치집단이 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인식한다. 미디어법이 조중동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민주당의 처지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것이다. 애정을 듬뿍 담아 끌어안을 것인지, 아니면 가차없이 내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에 보여줄 민주당의 태도를 보면서 민주당의 운명을 가릴 것이다.

민주당은 뜨거운 감자였다. 버릴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골칫거리였다. 행적을 봐서는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싶지만 그 당이 승계한 전통과 그 당이 확보한 제1야당이란 위상을 쉬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욕하면서 기대했고, 기대한 끝에 실망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 유보적 관망은 상황이 절체절명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때나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민주주의의 종언’으로 규정한 마당이다.

민주당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의 싸움이 ‘면피성 쇼’인지 아닌지를 가리면서 그들에게 ‘독박’을 씌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의원직 총사퇴를 거론하다가 슬그머니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동반 사퇴로 물러앉는 모습에 기회주의가 담겼는지를 경계하면서, 민주당에 조종을 울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 민주의 운명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민주 회복’을 요구하던 길거리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커질지 판명 날 것이다. 길거리를 휘감는 허탈과 분노의 감정이 정치적 저항의 촉매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허무주의의 단초가 될지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누적됐지만 ‘민주 회복’의 성과는 축적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반성과 양보를 끌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정치적 반격과 보복이 등장했다. 길거리에 모였지만 돌아온 건 성과가 아니라 경찰 소환장이었다.

미디어법은 이런 악순환의 정점에서 강행 처리됐다. 미디어법은 ‘민주주의 후퇴’ 우려를 ‘민주주의 종언’ 탄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중요하다. 미디어법 ‘이후’의 판도에 따라 성취감과 허무주의가 운명을 달리한다. 국민의 정치 참여와 정치 이탈이 좌우된다. 미디어법 ‘이후’의 싸움에 따라 박근혜의 정체와 조중동의 실체와 민주당의 처지 또한 다른 운명을 맞는다. 심판대 위에 오를 수도 있고, 스쳐가는 단상일 수도 있다.

▲사진=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