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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화해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실현될 수 없다.

간극이 너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통한 심정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은 검찰의 책임을 묻는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교묘한 언론플레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검찰을 옹호한다. 검찰의 수사는 비리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였다고 주장한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다른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겠는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시각차를 묻어두고 손을 맞잡는 행위는 공모 행위다. 양자가 공모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다.

화해는 나중에나 모색할 일이다. 지금 긴요한 건 따질 걸 분명히 따지는 일이고 가릴 걸 분명히 가리는 일이다.

좋은 예가 있다. 시각차를 확인하고 진실을 가리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동아일보’의 보도다.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주장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죽였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 신문의 육정수 논설위원이 주장했다. “대통령과 검찰에 응분의 책임을 강요할 만한 근거는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책임 추궁에 상응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가 그랬다. “정권과 검찰, 특정 신문들이 거짓 혐의 사실을 흘리고 보도함으로써 죽음으로 몰았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했다. 오히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신중한 조사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검찰 소환 후 너무 오랫동안 법적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죽음을 재촉했다는 주장”은 ‘왜곡“이라고 했다. 오히려 ”박연차 씨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혐의사실을 부인해 증거 보강수사를 하던 중이었다는 검찰 설명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걸 기준으로 삼자. ‘동아일보’의 이 같은 주장을 지렛대 삼아 진실 확인의 필요성을 확인하자.

반대 정황이 있다. ‘동아일보’가 “억지”라고 주장한 “거짓 혐의 사실을 흘리고 보도(한 행위)”가 꼭 “억지” 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사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이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1억원짜리 명품시계를 구경도 못 했다고 밝혔다. 박연차 회장이 이 시계를 건넨 상대방은 노건평 씨 측이라고 했다. 노건평 씨의 부인이 권양숙 씨에게 전화를 걸어 시계 수령 사실을 얘기하자 권양숙 씨가 “논두렁에 버리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 있다. 검찰이 전 시애틀 총영사와 노건호 씨의 경호원을 조사했을 때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아들 노건호 씨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 직위를 이용한 의혹,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차 과테말라로 향하다가 기착한 시애틀에서 몰래 100만 달러를 전달했을 가능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의혹은 권양숙 씨가 딸 노정연 씨에게 돈을 나눠 전달했다는 검찰발 소식이 나오면서 묻혀버렸다.

아주 상징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 수수범’을 넘어 ‘파렴치범’으로까지 몰아갔던 의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이것이 약화시킨다. 검찰 수사의 핵심 문제,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이 오간 사실을 대통령 재임 중에 알고 있었는지를 살피는 창을 뿌옇게 가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품 시계를 받아 손목에 찼다면, 외국 방문길에 100만 달러를 몰래 숨겨간 사실이 확정됐다면 그 순간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 수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제기하는 것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으면서도, 그것도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불러 조사했으면서도 23일이 지나도록 사법적 판단을 미룬 검찰의 처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이다. 객관보다 주관을 앞세웠을 가능성, 사실보다 의도를 우선시했을 가능성, 과정에 천착하지 않고 결과를 미리 도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검찰 수사가 형편없었다고, 그런 수사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고 몰아가지는 않겠다. 정황에 기댄 섣부른 예단이 아니라 엄격한 사실 규명을 통한 확정만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훗날 또 발생할지 모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시금석이 마련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동시에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의 조치를 되살펴야 한다. 사망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는 지속할 수 없다는 사법논리가 문제라면 수사가 아니라 규명 차원에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추가 수사가 불가능하다면 그동안 축적한 수사자료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다른 게 힘들다면 최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진술조서만이라도 공개해 대척관계에 있던 의혹과 항변의 줄기가 무엇인지 국민이 알도록 해야 한다.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를 여는 '서막'이어야 한다. 

걱정할 필요없다. 수사자료 공개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고인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피의사실은 과도할 만큼 공개되지 않았는가. 누를 끼치는 것으로 모자라 고인의 이미지는 누더기가 되지 않았는가.

검찰이 안 하면, 나아가 MB정부가 거부하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회의 권한으로 수사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건 정치공세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국가원수의 도덕성을 확인하고 권력의 수준을 재기 위한 당연한 업무이자 역사적 과제다.


▲‘검찰책임론’을 비판한 ‘동아일보’ 5월 30일자 ‘사설’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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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담을 수가 없습니다.
거친 마음과 짧은 필설로는 고인을 보내는 심정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 노래를 바칩니다.
암울했던 80년대, 대학가 선술집에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광주의 원혼들을 기리며 부르던 노래입니다.
꽃상여로 모시지 못하는 죄스런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바칩니다.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의 모진 꿈만 꾸다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숲 사이로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에 뿌리고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이제 내려놓으십시오.
모진 꿈은 모두 후세의 몫으로 남기고 고이 잠드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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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1.
어제 차 안에서 우연히 들었습니다. 한 라디오프로그램 청취자가 보낸 큰스님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크게 상심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큰스님들이 보이는 모습에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설프게 ‘좋은 말씀’ 하려 하지 않고 그냥 듣는 답니다. 슬며시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거나 밥을 준다고 합니다. 목이 마를까봐, 허기가 질까봐 그렇게 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맘껏 토해내게 한답니다.

큰스님들을 바라볼 필요까지 없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파하는 친구에게 격려 또는 충고의 한 마디를 던지는 게 부질없다는 걸 일반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들어주는 것,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의 태도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습니다.

큰스님도 알고 일반인도 압니다. 토해내는 이도 알고 듣는 이도 압니다. 가슴에 묻어두면 안 된다고, 토해내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다들 알고 있습니다. 


2.
어리석습니다. MB정부는 정말 어리석습니다. 정치가 인생사 이치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우치지 못합니다.

틀어막으면 맺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추모하는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포개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가슴에 묻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눈 밖에 난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합니다.

틀어막아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향불이 곧 촛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촛불은 굵고 짧게 타오르지만 향불은 가늘고 길게 타오른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합니다.

3.
압니다. 상처 받기 싫어서 그런다는 걸, 촛불에 데일까봐 겁나서 그런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부질없습니다.

이미 데였습니다. 촛불이 아니라 향불에 이미 화상을 입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후임자의 도리, 정부의 도리는 빨간 불꽃에 검게 그을렸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데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막을 수 있습니다. 화상의 기운이 살갗을 파고드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부풀어오른 물집이 안으로 스며들어 고름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방법이 따로 없습니다. 국민 가슴에 맺히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겁니다. 보내는 자의 마지막 도리를 다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MB 정부는 추모객을 덕수궁 돌담 밑으로 밀고,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칩니다. 그렇게 한켠으로 내몰면서 사그라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리석습니다. MB정부는 정말 어리석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그라지는 게 아니라 맺힙니다. 국민이 덕수궁 돌담 밑으로 내몰리는 게 아니라 MB정부가 서울광장에 갇힙니다.


▲사진=경찰 버스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호외와 국화꽃을 붙이는 시민(위)과 경찰버스에 에워싸인 서울광장(아래)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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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다시 황석영 씨를 떠올린다.

이명박 대통령을 ‘중도실용주의자’로 평가했던 그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지, 이명박 정부에 협조하기로 한 그의 작심은 여전히 굳건한지, 이명박 정부로부터 중도실용적인 대북정책을 끌어내겠다던 그의 자신감은 여전히 튼튼한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주의자’라는 걸 믿는다며 그 예로 PSI 참여 보류 결정을 들었다. 거듭 확인했다. 지난 18일 블로그에 글을 올려 자신의 결정이 정당함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밝혔다.

“저는 북한의 서바이벌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로켓 발사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지켜보면서, 만약에 우리 정부가 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대화의 문은 닫히고 말 것이며 정부에 걸었던 기대를 포기하리라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대통령이 PSI 참여를 전면 보류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라시아 순방의 동행을 제안해왔을 때 서슴지 않고 응낙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지요.”

바로 이것 때문이다. 황석영 씨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가, 황석영 씨의 ‘중도실용적’ 선택이 타당한 것인지를 거듭해서 묻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정부가 오늘 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이같이 결정했다.

이로써 무너졌다. 황석영 씨가 부여잡았던 ‘믿음의 근거’는 채 열흘도 안 돼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일구려 했던 황석영 씨에게 왜 코앞을 내다보지 못했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겠다. 황석영 씨에게 ‘점쟁이’의 능력을 요구하면서 결과론을 들이미는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비판성 반문은 지극히 정당하다.

이미 예견됐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직후 내외신이 2차 핵실험 가능성을 점쳤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즉각 나서기 어려운 형편을 들어, 그리고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는 북한의 의도를 들어 그렇게 내다봤다.

더불어 점쳐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PSI 전면참여 보류 결정은 말 그대로 보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나서면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세력의 반발에 밀려 PSI 전면참여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런데도 황석영 씨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과소평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 기댔다. 그러면서 호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이 기간 동안 가시적 변화를 끌어내겠노라고 했다.


말을 돌리자. 황석영 씨의 ‘판단 미스’를 물고 늘어지면서 생채기를 낸다고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건 없다. 그 대신 물어보자. 황석영 씨가 그 과도한 자신감을 앞으로 어떻게 정책에 투영시킬지를 물어보자.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며, 어떻게 이미 결정된 PSI 전면참여를 되돌릴 것이며, 어떻게 대북 강경파를 제압할 것이며, 어떻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것인지 그 묘책을 물어보자.

간절하기에 하는 말이다. 황석영 씨의 말대로라면 이명박 정부의 PSI 전면참여 선언으로 남북관계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혹한기를 맞게 될 터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면 개성공단이 문 닫고 남북왕래길이 닫힐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묻고 또 묻는다. 조소가 아니라 열망을 깔고 묻는다. 있는가? 황석영 씨는 힘이 있고 묘책이 있는가?

▲사진=소설가 황석영 씨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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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철거민 5명이 죽었습니다. 그 뒤 그들은 도심 테러범이 됐습니다. 화염병과 시너로 무장한 채 옥쇄투쟁을 한 무서운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 뒤 영정은 파손됐고 유족은 폭행당했습니다. 추모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 뒤 진실은 묻혀있습니다. 법원이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했지만 검찰은 한사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회장이 죽었습니다. 그 뒤 동료노동자들은 폭력범이 됐습니다. 죽창으로 경찰을 마구 찔러댄 무자비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 뒤 묻혔습니다. 박종태 지회장이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화물노동자들의 처우는 묻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그 뒤 그는 못난이가 됐습니다. 측근비리를 막지 못한 사람이 됐고 비극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 뒤 조문객은 ‘잠재적인 시위꾼’이 됐습니다. 언제 촛불을 들지 모르는 요주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같습니다. 죽은 자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또 어떤 이는 ‘사회적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존재의 조건과 존재의 이유를 부여잡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자들은 추모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어떤 이들의 ‘해원’을 읍소하고, 또 어떤 이의 ‘번민’을 헤아리려고 합니다. 남은 자들은 그게 남겨진 자들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생전이나 사후나 똑 같습니다. 법은 매정하고 공권력은 철통 같습니다. 가슴은 팍팍하고 눈물은 말랐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서슬 퍼런 찬 기운이 돕니다.


내일이 된다고 해서 찬 기운이 녹을 것 같지 않습니다.

김동길 명예교수가 했다는 말이 반증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야단법석”을 떠는 세태를 비판하며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인가”라고 한탄했다는 그의 말이 시사합니다.

이 나라에는 법만 있습니다. 그것도 눈물이 메말라 버린 ‘진시황의 법’만 있습니다.

감정과 동정이란 표현은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그 표현에 ‘부적절’이란 선입견이 깔려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신 배려와 이해란 말을 쓰겠습니다.

현 정권엔, 그리고 보수 집단엔 배려하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경쟁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화하려 하지 않고 존중하려 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가 법과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는 법의 대체 개념이 아니라 법의 보완 개념인데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는 법의 정당성과 법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인데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득하려 하지 않고 굴종하기를 강요합니다. 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게 아니라 최우선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따뜻한 보수’는 없습니다.

▲사진=노무현의 눈물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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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했습니다.

예우하지도 않았고 정중하게 모시지도 않았습니다. 경찰은 서울 덕수궁 앞에 차려진 임시 빈소용 천막을 걷어냈고 조문객의 앞길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부했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망하고 있습니다. 봉하마을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찢겨지고 한승수 총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정동영 의원 등의 조문이 가로막혔습니다.

헤아릴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후 청와대발 뉴스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파장에 대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인에 대한 조문이 행여 제2의 촛불로 번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울먹이던 한 친노 인사가 울부짖었습니다. 정권과 검찰과 조중동을 향해 ‘당신들이 원한 게 이것이었냐’고 되물었습니다. 친노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 타살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닙니다. 이건 아닙니다. 정중하게 모셔야 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은 그래야 합니다.

가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 결코 개인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정치적 사안이고 역사적 사건입니다. 더구나 정치적 타살 주장이 불거진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려야 합니다. ‘정치적 타살’이라면 그 근거를 대고 책임을 물어야 하고, ‘정치적 타살’이 아니라면 그 역시 반론을 펴고 자중을 당부해야 합니다. 원망하는 마음도, 경계하는 마음도 아닌 얼음장 같이 차가운 마음으로 캐고 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추모할 때입니다. 예우를 다해 상여를 멜 때입니다. 일단은 그래야 합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을 보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쓰러져 있다(위)
          경찰이 덕수궁 앞 조문객을 가로막고 있다(아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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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말문이 막힌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몇시간 동안 멍한 표정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뉴스만 쳐다봤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교차했을 찰나에 고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잔인하게 호기심을 내보이는 게 아닙니다. 가장 절박하고 가장 솔직하고 가장 암울했을 시점이 바로 그 찰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각이 조금씩 나오더군요. 수행한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은 다음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바라보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했다고, 그리곤 곧장 몸을 던졌다고….

……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맺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김경한 법무장관이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종료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공소대상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 종결은 당연한 것이란 해설도 뒤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사법논리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사 이치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잠깐 동안의 애도 물결이 걷히고 무감과 무심이 다시 세상을 휘감을 때 '노무현'이란 이름 석 자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인정했던 100만 달러 수수 사실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무심한, 그리고 냉정한 기억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100만 달러를 수수한 게 객관적 사실이고, 가족의 이런 행동을 막지 못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남게 될 겁니다.

그런데도 다시 묻습니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노무현'이란 이름 석 자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요?

살아생전에 고인이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00만 달러 수수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나는 몰랐다고, 이렇게 말하는 게 구차하지만 그래도 진실이니 어쩔 수 없다던 고인의 말이 귓가를 맴돌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유서에 남겼다는 말의 여운이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는 말에 행간이 깔려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모두 묻혀버립니다. '나는 몰랐다'는 그 짧은 언사에 담겼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해소되지 않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을 내몰아야 했던 한 인간의 번민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고뇌와 번민이 진실이라면 그렇습니다. 나는 몰랐다고 두번 세번, 아니 수십번이라도 항변하고 싶지만 그러면 부인과 자식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아 차마 하지 못한 한 인간의 비애가 묻혀버립니다. 검찰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면 그 고뇌와 번민마저 변명과 합리화로 채색돼 묻혀버립니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두 달을 끌어온 사건입니다. 어떤 국민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했고, 또 어떤 국민에겐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정치보복과 표적수사의 혐의를 불러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엇갈리는 시선 한 가운데 있었던 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지’ 여부였습니다. 가를 수가 없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끝내버리면, 그래서 진실다툼의 여지를 영원히 없애버리면 엇갈리는 시선을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딱히 제시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법논리를 뛰어넘는 더 큰 논리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치논리로 풀자고, 검찰이 가리지 못하면 정치권이 청문회를 해서라도 '옥'과 '석'을 가리자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키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방법이 고인을 더 욕되게 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섭니다.

그냥 이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요? 무력하게, 소극적으로 고인을 애도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는 걸까요? 다시 말문이 막힙니다.

▲사진=지난 4월 30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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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