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 그러더군요. 사랑은 '아이스 바'라고.
무슨 말인가 했는데 뒤따르는 설명이 걸작이었습니다. 먹을 땐 달콤하지만 먹고 나면 앙상한 나무토막과 갈증만 남는 게 '아이스 바'라고 하더군요.
총선 결과를 보면서 '아이스 바'를 떠올립니다.
2.
민주당 성적표가 초라합니다. 17대에 152석이던 의석수가 18대에서 81석으로 줄었습니다. 반토막이 난 겁니다.
시야를 좁히면 더 처참한 몰골이 드러납니다. 민주당의 아성과도 같았던 서울, 특히 동북부 벨트에서 민주당 후보, 그것도 중진급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KBS가 패널조사를 했습니다. 대선 때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가 이번 총선에서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를 보여주는 조사였습니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의 20%가 이탈한 반면 정동영 후보 지지자의 45%가 이탈했더군요.
결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공학적 통합으로 복원을 시도했지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3.
지금 서울 동북부에 부동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자고나면 아파트 값이 수백 수천 만 원씩 오르고 있습니다.
노원구의 경우 3월 아파트값 상승률이 5.7%였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과 수도권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각각 0.8%와 1.4%였으니까 노원구의 상승세가 얼마나 가파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기간 서울 동북부에서 또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뉴타운을 비롯한 개발 공약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파트값만 상승한 게 아니라 기대심리도 덩달아 뛰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들이 줄줄이 패배했습니다.
4.
고리를 발견합니다. 서울 동북부에서 나타난 현상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합니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기대가 움트고 있습니다. 사랑이 진 자리에 다른 사랑이 싹트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강남 공화국'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치들이 일렬종대로 행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렬의 맨 앞자리에 부동산이 있었습니다.
서울 동북부는 가장 극명한 곳이었습니다. 강남 대 강북의 대비에서 맨 끝자락에 놓이는 곳이었죠. 강남의 전세가가 3.3제곱미터 당 1천만 원을 돌파할 때 서울 동북부의 아파트 매매가는 1천만 원을 밑돌았습니다.
4.
개혁이 좌초했습니다. 비주류 출신 대통령이 펼칠 사회·경제적 개혁에 잔득 기대를 걸었던 그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더불어 쌓였습니다. 개혁에 대한 기대감에 먼지가 쌓이고 자기 본위의 생존본능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개혁에 염원이 '아이스 바'의 나무토막처럼 앙상해졌고, '살고 보자'는 갈증이 커졌습니다. 믿음이 '해준 게 뭔데'라는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5.
탓할 일은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은 사랑만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아이스 바'를 입에 대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놓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스 바'가 아니라 '물'을 집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처없는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둘러보면 그렇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읊조리기엔 민주당의 색깔이 분명치 않고 '새 술은 새 부대에'를 강조하려니 진보정당이 분열돼 있습니다.
그저 한 곳만 바라봅니다. 새로 집어든 '아이스 바'가 또 어떤 갈증을 남길지를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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