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상도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후보자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면접장에 들어서자 공천심사위원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이외에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구인가요?”
이 신청자가 답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는 몰라도 소신있는 정치인입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탈락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일부 위원들이 “소신 발언인데…”라며 거들었다가 질책만 들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더 이상하다”는 질책…. <조선일보>가 전한 내용입니다.
2.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소신있는 정치인일까?’
줄곧 지역주의에 반대하고 정당개혁을 갈망했던 그의 족적을 봐서는 고개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경력을 봐서는 마냥 동의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두기로 했습니다. 짧은 필설로 간단하게 결론 내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3.
시선을 돌리니까 “이상하다”는 이 한 마디가 돌출되더군요.
소신 발언을 한 공천 신청자가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런 소신 발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공천심사위가 이상한 걸까요?
이 궁금증 또한 접기로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치부하기로 했습니다.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옛말이 있죠? 아무리 소신이 좋아도 번지수를 잘못 찾으면 ‘꼴통’이 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뿐인가요? '소신'이 이상하게 취급되는 현상이 한나라당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4.
두 전직 장관이 있습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은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의 수도권 출마 압박을 받고 서울 관악 을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많습니다. 이곳은 호남 유권자가 40% 정도 되는 민주당 강세지역이라고 합니다. 당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과 '안전운행'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행적이라고 합니다. 관악 을이 지역구였던 이해찬 전 총리는 대놓고 “정치 도의에 맞지 않는다”고 쏘아붙일 정도입니다.
어제 하루 연출된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을 떠올렸습니다. 낙선할 것을 뻔히 알면서 서울 종로와 부산을 자진해서 찾은 사람이 그입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보 노무현’이었죠.
얼핏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정치판에서 소신을 지키려면 ‘바보’가 돼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요.
5.
정덕구 전 장관을 보면서 거듭 확인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를 지낸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2월 의원직을 던졌습니다.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진력하고자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한나라당이 어제 발표한 충청․호남권 공천자 37명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에 비공개로 공천 신청을 해서 충남 당진 공천을 받았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철새행각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묻고 싶지만 참으렵니다. 반면교사도 교사이니까요.
얘기하고 싶은 건 따로 있습니다. 소신을 지키려면 ‘바보’가 되고 실리를 챙기려면 약게 처신해야 하는 블랙 코미디 같은 현실입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우리 정치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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