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학을 전공한 분들게 괜히 욕만 얻어먹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옮겨 보렵니다. 더 적당한 예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랬다는군요. 삼정승보다 더 명예로운 자리가 대제학이었고, 대제학보다 더 높이 추앙받았던 이가 처사라고 하더군요.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사람 말입니다.
언제 읽은 건지, 어느 책에서 읽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구절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권세에 이끌리지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도 않고 오로지 일가를 이루는 데에만 전념했던 사람들이 진짜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크게 공감 가는 구절이었습니다.
2.
책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굳이 언제, 어디서를 되짚을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시중에서 흔히 하는 얘기이니까요.
"자리가 뭐길래?"
그렇습니다. 도대체 자리가 뭘까요?
돈은 벌만큼 벌었습니다. 사회가 선망하는 위치에도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족함을 알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나 봅니다.
어느 순간 만신창이가 됩니다. 숨겨졌던 각종 행적이 하나 둘 발가벗겨지고 난도질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때로는 순순히 시인하는 모습으로 곤경을 돌파하려고 합니다. 충만한 권력의지로 한 자리 꿰차려고 애를 씁니다.
왜일까요? 왜 저렇게 무리수를 두는 걸까요? 구경꾼이 보기엔 남는 것 하나 없는 장사 같은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면서 한 자리 차지하려 합니다. 왜일까요?
3.
이렇게 해석하면 과한 걸까요?
어느새 '자리'가 '명예'와 동의어가 돼 버렸습니다. '자리'가 '능력'의 보증수표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한 계단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선망의 눈길이 더 짙어집니다. 거기서 한 계단 더 높이 올라가면 가문의 영광이 되지요.
달리 잴 척도가 없습니다. 수천만이 부대끼며 살지만 삶의 분야는 파편화되고 있습니다. 내 분야가 아니면 누가 누구인지를 알 길이 없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이렇게 다원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 우뚝 서는 길은 공공의 영역에서 정점에 오르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면을 세우는데 명함처럼 좋은 도구는 없습니다.
4.
이렇게 보면 남는 장사입니다.
여론의 매타작은 순간입니다. 두 눈 질끈 감고 두 귀 틀어막고 살면 됩니다. 그렇게 일주일또는 열흘을 귀머거리로, 장님으로, 벙어리로 보내면 됩니다. 그렇게 인고의 나날을 보내면 영광이 찾아옵니다.
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정자 또는 후보자의 꼬리표를 떼고 이름 석 자 뒤에 장관 또는 수석 직함이 달리면 모두가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들이 속으로 뭐라 하건 그건 알 바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공손히 머리 조아리고 귀빈 대접 받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만이 아닙니다. 영원히 남습니다. 장관 아무개로, 수석 아무개로 족보에 길이 남게 됩니다. 가문을 대표한 위대한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 한 가지 빼먹을 뻔 했습니다.
앞서 읊조린 모든 얘기는 출발점이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걸 전제로 하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발가벗겨진 자신의 행적이 정당하다고, 아니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다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러난 어떤 이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고, 버티고 있는 어떤 이는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느냐"고 반문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이들에겐 인고의 세월이 아닙니다. 투쟁의 기간이지요. 부당한 여론 재판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불퇴전의 기간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타협은 없습니다. 명예는 흥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명예장을 수여한 사람이 맘을 바꿔먹지 않는 한 명예전쟁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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