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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는 뭐하고 산다든?"
"그 애, 기자 됐대."
"기자?…. 그 애 학교 다닐 땐 착했었는데…."

언론계 선배 ○○○가 전해준 '실화'입니다. 고교 반창회에서 조우한 친구가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짝꿍 근황을 얘기했더니 이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더랍니다.

졸지에 '참 나쁜 사람'이 된 선배가 긴 한숨 끝에 이 말을 내뱉더군요.

"이러고 살아야 하나…."

2.
"너, 그거 아냐?"
"뭐요?
"딸 가진 기자가 많다는 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 통계라도 내봤습니까?"
"통계? 그것보다 더 정확한 게 내 '과학적인 통찰'이야. 분명히 딸이 많아."
"'과학'은 무슨…. 술이나 드쇼."

술이 불콰해진 선배는 그래도 굽히지 않고 장광설을 이어갔습니다.

기자, 그 중에서도 편집기자의 딸 출산 비율이 높다. 왜냐? 몸이 산성화되기 때문이다. 각종 스트레스에 찌들면 몸이 산성화되는데 특히 편집기자는 '미다시(제목의 일본말)' 뽑고 '와리스케(레이아웃의 일본말)' 짜느라고 스트레스가 더 하다. 그러니까 딸 출산 비율이 높다….

저와 술잔을 부딪치던 이 선배는 편집기자였고, 딸 만 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3.
기자의 딸 출산 비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과학적 통찰'의 결과일 겁니다.

대략 십수 년 전부터 나타난 현상입니다. 몸값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자짓 하다가 퇴직을 하게 되면 갈 곳이 적잖았습니다. 정부부처 공보관, 또는 대기업 홍보실 간부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 이런 '특혜'는 사라졌습니다. 그곳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아졌고 어떻게 문턱을 넘는다 해도 공보관이나 간부 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죠.

쥐꼬리만한 변화이지만 그래도 변화입니다. 연줄에 대한 의존도가 쥐꼬리 만큼 줄어들면서, 전문성 중요도가 소꼬리만큼 늘어나면서 기자의 효용가치가 떨어진 겁니다. 이른바 '엘리트'라고 불리는 '먹물'의 공급구조가 다양화되고 풍성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4.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스트레스는 엄청 받는데 사회적 인식은 곱지 못하고, 그렇다고 '퇴직 이후'가 보장되지도 않는 직업…. 그게 바로 '기자'입니다.

앞에서 든 사례가 다소 부적절하고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만 기자에 대한 제 묘사와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걸핏하면 명예훼손 시비에 휘말립니다. '빨간 날'하고 담 쌓고 지내는데 그렇다고 '칼 퇴근'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닙니다. 언론사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른바 '마이너' 언론사의 기자들은 중소기업 수준, 더러는 그보다 못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의 엇나간 논조와 일부 기자의 부정확한 보도로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기자를 보는 눈도 곱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분탕질이나 해대고 멀쩡한 인생을 여론재판대 위에 세우는 '참 나쁜' 존재가 돼 버렸지요.

그 뿐인가요? 이제 '펜'은, 언론은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결혼정보업체에서 기자는 찬 밥 신세라고 하더군요. 등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

5.
기자들이 총선에 출마하려고 줄줄이 정당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하죠?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자가 정치판에 뛰어드는가 싶어 관련기사를 살폈더니 정말 많더군요.

보는 눈이 곱지 않습니다. '권언유착' '기자윤리'란 비판이 공천신청장을 작성하는 기자들의 등에 가 꽂힙니다.

당연한 비판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립적인 양, 객관적인 양 보도를 하다가 오늘은 특정 정당의 당원증을 발급받는 모습은 분명 기형적입니다.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근데 왜일까요? 이런 날선 비판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감에 휩싸입니다. 기자의 '변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런 기자를 향한 비판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되풀이됩니다. 되풀이 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습니다.

6.
언론계 노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지사형 기자'의 시대는 갔다. '전문가형 기자'로 가야 한다"고….

수십 년을 '지사형 기자'로 살아온 분이 이렇게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시대에선 용기만 있으면, 목소리만 크면 됐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총론이 아니라 각론에, 도덕이 아니라 실재에 착목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습니다. 각론에 대한 이론과 현장경험을 두루 갖추지 않고선 기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7.
기자의 '줄사탕 변신'을 보면서 '필연'을 떠올립니다.

박봉과 격무는 참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도 묵묵히 감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는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기자-차장을 거쳐 부장을 달게 되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기자가 취재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되는 언론계 현실, '장' 자리 꿰차지 못하면 물먹은 것으로 간주되는 언론계 풍토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전문기자'로 거듭나고 싶어도 '출입처 취재'에 따라 '돌림빵'을 시키는 기자 훈련시스템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페셜리스트'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냥 바지런한 '현장 노기자'로 살아가고 싶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너럴리스트'가 선택할 카드는 많지 않습니다. 정치판은 아주 만만한 거주지이지요. 눈치 잘 보고, 말 잘 하고, 싸움 잘 하면 기본은 하는 동네이니까요.

8.
노파심일까요? '필연'을 강조하는 이유가 '변신 기자'들을 두둔하기 위해서라는 혐의를 받을까봐 걱정스럽네요. 그건 아닙니다.

이런 점이 있습니다. '변신 기자' 중에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이른바 '메이저' 언론 출신이라는 사실, 그것도 그 언론사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던' 기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앞서서 제가 주절주절 떠든 모든 얘기를 뒤집는 강력한 반증사례가 될 겁니다.

기자의 열악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높이 '상승'하기 위해 정치판을 기웃거린다는 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변신 기자'가 소속됐던 언론사가 자신이 문을 두드리는 특정 정당과 코드를 맞춰왔다는 점을 추가하면 '기회주의적 권력욕'으로 비판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둔' 혐의를 무릅쓰면서까지 '변신의 필연구조'를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끊기 위함입니다. '변신의 필연구조'를 끊지 않는 한, 언론계 구조의 개선을 꾀하지 앉는 한  '코드 변신'은 둘째 치고 '무코드 변신'을 확대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는 기자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아닙니다. 정치권으로 전향한 기자는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기자들이 언론계를 떠나 비정치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