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투가 꽤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이 그랬습니다. 우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을 따면 청와대에 있던 전두환 씨가 축하 전화를 걸고, 세계 챔피언은 두 손으로 수화기를 받쳐든 채 전화를 받고, 방송은 어색한 통화 장면을 생중계했습니다.
그런 장면이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치고받는 권투의 폭력성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학교 앞 선술집에서였습니다. 몇 해 전 링에서 숨진 김득구 선수 얘기가 나오길래 구호 제창하듯 외쳤습니다. 권투를 아예 없애야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가 한 마디 하더군요. 권투처럼 인간적인 스포츠는 없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달겨들었습니다. 민주와 인권을 떠드는 선배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따졌습니다.
그 선배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몇 마디 더 얹더군요. 폭력성과 공격성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권투는 그런 폭력적 공격 본능을 원초적으로 표현한 스포츠라고….
참으로 시니컬한 말이었지만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폭력적 공격 본능을 입증하는 사례가 지천에 널려있었으니까요. 그 때는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2.
최요삼 선수의 일기가 공개됐습니다. 다이어리 한 권 분량의 일기라고 하더군요.
<연합뉴스>는 다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두툼한 삶의 기록을 단 몇 줄로 추려 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운이 길게 남더군요.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연합뉴스 기사 보기>
"이제는 끝내고 싶다. 권투를…맞는 게 두렵다."
왜였을까요? 최요삼 선수는 왜 두려움에 떨면서도 글러브를 벗지 못했던 걸까요?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너무나 생각난다. 권투도 나를 버릴까."
절실했었나 봅니다. 정말 간절했었나 봅니다. 식어버린 권투 열기로 방어전 일정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인간적인 배신 등 갖가지 심적 고통을 당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인간적 배신'처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공격이 없습니다. 몸뿐 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만들죠. '인간적 배신'처럼 무자비한 폭력이 없습니다.
일기장 곳곳에 적혀있다는 '외로움'이란 세 글자를 떠올려 봅니다. 천지간에 나밖에 없다고 느낄 때, 전화번호부를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을 뒤져도 맘 편히 전화 한 통 걸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할 때 절망합니다.
술로 달래는 건 한순간입니다. 대개가 일에 파묻힙니다. 최요삼 선수도 마찬가지였겠죠. 글러브를 벗을 수 없었던 이유, 두려움에 떨면서도 링 위에 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자기 존재감을 유일하게 확인시켜주는 게 바로 권투였기 때문일 겁니다. 식어버린 권투 열기를 헤치고 아주 어렵게 낀 글러브였기에 더더욱 벗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기 위해 상대 선수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겁니다.
다를 바 없습니다. 최요삼 선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 링 위에서 또 다른 폭력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부여잡고, 그 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주먹을 휘드르는 것과 세치 혀를 놀리는 것에 차이는 없습니다.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과 결재서류를 내던지는 것에 구분은 없습니다.
지금도 폭력의 시대인지 모릅니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새도매저키스트'인지 모릅니다.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의 양면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런 존재….
3.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피치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꿈꿉니다. 최요삼 선수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제는 피 냄새가 싫다."
하지만 확신하지 못합니다. 최요삼 선수는 "내일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다 헤진 채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소모품이 될지 몰라 노심초사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오늘이 연장될 뿐입니다. 꿈은 작아지고 평화는 멀어집니다. 그러다보면 이렇게 되겠죠. 최요삼 선수 말처럼….
"감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4.
지금 이 시각에도 최요삼 선수는 미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푸른 초원을 꿈꾸던 최요삼 선수가 식물이 돼 버렸습니다.
기원합니다. '감각'만이라도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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