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불교계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정동영·문국현 후보 ⓒ정동영 후보 홈페이지
민주당과의 통합에 목을 맸던 정동영 후보가 들으면 불쾌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정 후보는 잘못된 길,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편한 길을 걸으려고 했다. 이게 과오였고 패착이었다.
거슬러 올라가자. 이회창 후보가 독자 출마를 선언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온통 '야권 분열'에 맞춰졌다. 그의 출마가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되는지를 열심히 계산했고, 대선 판세가 어떻게 요동칠지를 궁금해 했다.
이게 현실이다. 대선은 딱 한 명의 우승자를 뽑는 게임이다. 게임의 양상에 관심을 쏟는 건 자연스럽다. 그래서 탓할 수 없다.
그렇다고 편승할 수도 없다. 이런 독법은 반쪽짜리다. 대선이 우승자를 가리는 게임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지형, 새로운 정치조류를 창출하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특수성을 띠는 선거라면 더욱 그렇다. 대선에 뒤이어 총선이 치러지는 점, 따라서 총선이 대선의 여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선이 새로운 정치 지형과 조류를 창출하는 중요한 분기점인 건 분명하다.
이 점을 전제해 놓고 보자. 이회창 후보의 독자 출마에서 정독해야 할 항목이 하나 더 나온다. 보수의 '물갈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애매모호한 대북관'을 출마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념적으로 정통 보수는 자기라는 주장이었다.
이 건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이명박 대 이회창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양분된 보수 가운데 어느 한쪽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보수의 물갈이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된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명박식 보수' 대 '이회창식 보수'의 싸움은 제한전에 불과하다. 이념, 더 좁히면 대북정책에 국한된 싸움이다. 따라서 보수진영의 풍토와 색깔 전체를 바꾸는 대역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수의 가장 큰 젖줄이 대북문제였음을 감안하면 이 싸움에 의미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똑같은 틀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협상을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 분당 이후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워온 두 세력이다. 한쪽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쳐왔고, 다른 한쪽은 '지역 전통'에 몸을 맡겨왔다. 이런 두 세력이 대선을 앞두고 합방을 하려고 했다. 과거로의 회귀, 구태의 재연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합을 주도한 정동영 후보 쪽은 정통 민주개혁세력의 복원 시도이고, 반한나라당 전선의 구축이라고 강변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통합의 조건으로 의결기구의 동수 구성을 흥정하고, 공천권의 배분을 약속하는 행태와 당내 민주주의는 상응하지 않는다. 금산분리 갖고는 부족하니까 아예 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금산분리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와 단일화를 꾀하는 모습은 개혁과 거리가 멀다.
반한나라당 전선보다 반노무현 기류가 더 성한 이유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읊조리는 건 무력하다.
민주개혁진영의 복원을 꾀하고자 했다면 다른 길을 걸었어야 한다. '정통' 민주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개혁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대선을 매개로 새로운 정치 지형과 조류를 창출하는 지름길이었다.
반론이 있다. 정동영 후보는 선후관계를 나눴을 뿐이라고, 민주당과의 통합을 먼저 이룬 다음에 문국현 후보와의 연대를 추진하고자 했었노라고 말한다.
사실관계가 틀린 항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항변도 아니다. 선후관계를 잘못 나눈 게 문제다. 정동영 후보가 정말 미래에 천착했었더라면 문국현 후보와의 연대를 성사시킨 다음에 이 새로운 물결로 민주당에게 후보 단일화(합당이 아니다)를 압박했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조류를 진작시키면서 분열도 막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거꾸로 갔다. 그리고 이제 와선 문국현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민노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을 주장한다.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가 그랬다.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참여정부의 황태자였지 않느냐는 패널 질문에 "나는 일하고 욕먹는 소였다"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빌리자. 트위스트를 추는 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소가 달구지를 잘못 끄면 1년 농사 수확물이 진창에 빠질 수도 있다. 소는 소다워야 가치가 빛난다. 묵묵히 일하다가 담담하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런 면모 말이다.
대통합민주신당도 정동영 후보도 죽어야 산다. 그래야 민주개혁진영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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