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면에 두 사람이 등장했다. 입시비리를 저지른 김포외고와 연결돼 있는 사람들이다.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한 사람은 여중생 이모 양이다. 바로 김포외고 입시비리를 처음으로 제기한 '고발자'다. 이 양은 지난달 31일, 김포외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시험문제 유출을 최초 제기했고, 이게 시발점이 돼 김포외고 입시비리는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이 양이 입시비리 사실을 알게 된 경위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렇다. "J학원(목동 종로엠학원)에 다니지만 시험 전날 김포에서 자느라 그(학원생에 시험문제를 돌린) 학원 버스를 타지 못한 친구가 억울해서 얘기해준 것"이라고 했다.
한 단어에 사로잡혀 눈을 뗄 수가 없다. "억울해서"란 표현이다. 이 양의 친구가 "억울해서"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억울한 걸까? 유출된 시험문제를 보지 못한 게 억울한 건가? '검은 비리'의 음덕을 입지 못한 게 그리도 억울한 걸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생이?
꽤 준엄한 물음이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리 설득력을 얻을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검은 특혜'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봤다면 그건 누가 봐도 억울한 일이다. 이 양의 친구가 이러할진대 이 양과 같이 목동 종로엠학원에 다니지 않은 학생들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중앙일보>에 등장한 사람은 김포외고 이사장 전병두 씨다. 그는 "참담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전병두 이사장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상고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자퇴했다고 하니까 법적인 학력은 중졸이다. 그런 그가 서울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38년 동안 악착같이 일을 해 모은 돈 210억 원을 털어 김포외고를 세웠다.
못 배운 게 한이 된 걸까? 전병두 이사장은 "건실한 서민과 중산층의 자녀들이 판사나 검사·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김포외고를 세웠다고 했다.
이렇게 세운 학교가 입시비리에 휘말렸다. 교육부는 특목고 지정 취소를 검토하고 있고, 학교 명예는 땅 바닥에 헤딩을 했다. "참담하다"는 그의 토로는 그래서 절절하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의 심정도 참담하다. <중앙일보>가 전한 전병두 이사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학교 설립자의 표상에 가깝다. 일요일에만 김포외고에 나간다고 했다. "훈수를 둘 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학교 운영은 교장과 선생님들이 알아서 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학교를 지은 사람이지 운영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고 한다. 사학법 파동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한 터라 더더욱 신선하게 들리는 말이다.
이런 그가 지금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두 사람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이해하려니까 난감해진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서 있다. 한 사람은 피해자로, 또 한 사람은 가해자로 서 있다. 한 사람은 최초 고발자로, 또 한 사람은 최종 책임자로 마주보고 있다. 도대체 이 부조화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걸까? 두 사람의 억울하고 참담한 상황을 감안해 해결책을 강구할 수는 없는 걸까?
시험 문제를 직접 유출한 이모 교사나 그를 관리·감독하는 위치에 있던 교장만 징계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시험문제를 미리 본 목동 종로엠학원 출신들만 불합격 처리하면 되는 걸까?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외고와 사설학원의 밀착관계는 어제오늘 지적된 문제가 아니다. 두 기관의 밀착이 주로 입시설명회를 매개로 이뤄졌다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전병두 이사장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외고 교사와 학원의 지나친 밀착 관계가 문제다. 지난해 설립된 김포외고는 학교 홍보를 위해 학원을 돌며 입학설명회를 했다. 내가 알기에, 그건 외고의 오랜 관행이다"라고 했다. 알면서 방조 또는 방치했다는 얘기다. 책임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목동 종로엠학원 출신들만 솎아내면 이중삼중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온다. '고발자' 이 양에게 시험문제 유출 사실을 얘기해준 친구만 해도 그렇다. 목동 종로엠학원 출신이지만 그는 학원 버스를 타지도 않았고, 시험문제를 미리 보지도 않았다. 이런 학생(억울해 한 걸 보면 낙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이 도매금으로 '땡' 처리될 수는 없다.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교육당국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터에 어설프게 입을 놀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하나는 비교적 또렷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실한 서민과 중산층의 자녀들"의 성공을 판검사나 의사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 그리고 판검사와 의사로 가는 중간관문이 외고라는 사고를 버리면 적어도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된다. 김포외고가 특목고 지정에서 제외된다 해도 전병두 이사장의 학교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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