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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2시쯤이었습니다. 둘째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빠, 선생님이 선물 도로 갖고 가래.”
“왜?”
“못 받는데. 교장선생님이 받지 말라고 하셨대.”
“그래서?”
“그냥 갖고 왔어.”

잠시 멍했습니다. 솔직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촌지는 줘서도 안 되고 주지도 않겠노라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용케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달랐습니다. 스승의 날은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작은 성의를 표하는 것까지 엄한 기준 밑에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되면 형편껏 마음을 담아 보냈고 그 때마다 아이를 통해 “선생님이 고맙대”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그마한 녹차 세트를 곱게 포장해 보내면서 “고맙습니다”란 의례적인 말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혹시 이 녀석이 뭘 실수한 건가?’

다른 사정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어땠는데?”
“애들도 다 그냥 갖고 갔어.”

그제서야 대충 ‘그림’이 잡혔습니다. 둘째에게 “알았어”라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학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머리속에 그려진 ‘그림’이 '실제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물밀 듯 밀려왔거든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허스키한 음색에 낮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월급을 받는데 그런 걸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성의인데….”
“죄송합니다. 애들이 들고 온 꽃도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교장선생님의 ‘지시’는 여쭐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지시’는 핑계였을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왜 선물을 안 받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난감했을 겁니다. 자칫하다간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둘러댄 것이었을 겁니다.

전후맥락은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그렇다고 곧장 말을 거둘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삼세번이라고 한 마디 덧붙여야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그래도….”

그 순간 선생님이 말꼬리를 자르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이가 찰흙을 잘 만져요. 이것저것 잘 만들고, 조소 쪽에 소질이 있어 보여요(다른 공부 잘 한다는 말은 안 하더군요).”
“아, 네. 학급생활에 잘 적응하나요?”
“그럼요. 얼마나 활달한데요.”
“아,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습니다. 변변히 말 한 번 못하고 선생님의 화법에 ‘말려’ ‘네, 네’만 연발하다가….

집에 돌아와 들춰봤습니다. 둘째가 되갖고 온 선물 포장지를 훓어봤습니다. 포장지 겉면에 테이프로 붙여놨던 둘째의 편지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편지는 보셨니?”
“응, 편지만 갖고 선물은 도로 주시던데.”

선생님은 ‘너무 고마운 우리 선생님께’라고 삐툴빼툴 적힌 편지만 받고 쑥색 한지로 곱게 포장된 상자는 돌려보냈습니다. 마음만 받고 물건은 돌려보낸 겁니다.

‘저 선물을 어찌 할꼬?’라는 생각은 잠깐뿐, 곧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린이채널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는 둘째에게 농반진반으로 말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이 너보고 미술 잘한데.”
“알아, 찰흙만들기 잘 했다고 칭찬받았거든.”
“그래? 너 미술학원 다닐래?”

그제서야 둘째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육해공을 넘나드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활극에 헤벌래한 표정과 뜻모를 감탄사를 바치던 둘째가 고개를 돌리더니 외마디를 남겼습니다.

“잉….”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