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의지가 대단합니다. 결기에 찬 말을 거침없이 토해냅니다. “정권차원에서 처절하게 붙을 것”이라고 했고, “사교육 개혁을 하다 장렬히 전사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겠답니다. 이르면 올 여름방학부터 학원의 심야교습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방과후학교를 통해 학원비의 5분의 1 가격에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대 가는 KTX’로 변질된 외국어고의 입시 등도 뜯어고치겠다고 했습니다.
실행력에 대해서는 고개 갸웃거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곽승준 위원장이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사교육 규제는 전두환 정부도 밀어붙였는데 왜 우리가 못하나”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밀어붙이기 분야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는 둘째가라면 서뤄워할 정부입니다. 불도저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정부입니다.
남는 문제는 실효성이고 성과입니다. 결기에 찬 어조만큼 결실을 맺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교육 유발 요인을 풀어버린 게 바로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젠 이름조차 하나하나 추리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자율학교를 세우려는 이명박 정부입니다.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에 자율형 사립고와 기숙형 공립고를 추가하고, 국제중학교와 국제고등학교를 신설하는 게 이명박 정부입니다. 고려대가 수시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는데도 손을 대지 않은 이명박 정부입니다.
냉소를 지울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병 준 사람이 약 처방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을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과거 불문하고 이유 막론하고 지지를 보낼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원합니다.
곽승준 위원장이 그랬습니다. “이번의 위기 국면을 이겨내려면 중산층을 키워야 한다. 중산층의 수입을 늘려주거나 지출을 줄여줘야 하는데 경제 위기 상황에서 수입 늘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학원비 지출을 줄이는 것은 소득 증대효과도 유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학원비 지출을 줄여주면 그만큼 소득이 증대하는 셈이니 중산층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얼마나 좋겠습니다. 곽승준 위원장 말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반대입니다. 중산층으로 남기 위해 기를 쓰고 학원비 지출을 늘리는 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친 후 중산층이 붕괴됐습니다. 가장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가게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양극화가 시작됐고 10년 세월 동안 간극은 벌어질대로 벌어졌습니다.
추락한 가장이 회생하는 방법으로 부여잡은 게 교육입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가장이 추락을 면하기 위해 선택한 게 교육입니다. 자식만이라도 몰락의 참화를 피하게 하려고 ‘빽’을 얹어주고 싶었고 그래서 학원을 찾습니다. 대단한 ‘빽’이 아닙니다. 최상류층으로의 수직상승을 보장하는 그런 ‘빽’이 아닙니다. 그냥 대기업에 취직해 빚 안 지고 살 정도, 다시 말해 중산층으로 사는 것을 보증하는 ‘빽’일 뿐입니다. 이런 ‘빽’을 따내기 위해 ‘올인’합니다. 자식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 맞벌이를 하고, 맞벌이 때문에 아이가 방치되는 걸 우려해 학원을 찾습니다. 이게 우울한 우리 현실입니다.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면 아이가 방치되는 건 막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어차피 ‘빽’의 공유면적은 극도로 좁아져 있습니다.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빽’ 추구 현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빽으로 가는 KTX’를 타려는 욕망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빽으로 가는 KTX’는 외국어고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신설되는 수많은 자율학교도 ‘빽으로 가는 KTX’입니다. KTX가 지천에 널렸는데 어떤 손님이 무궁화호를 타려고 하겠습니까.
“이번의 위기국면”이 문제인 게 아니라 “이번의 위기국면”에서 보여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더 문제입니다. 부자감세를 늘리고 복지부문을 축소하는 정책이 더 문제입니다. 이렇게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정책이 고수되는 한 중산층의 학원비 지출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학원비 지출의 양태, 즉 양성과 음성을 가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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