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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를 떠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논의해보고 싶은 문제였습니다. 이제 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기러기 아빠’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기러기 아빠입니다. 거의 ‘척도’가 되다시피 했죠. 환율 상승이 민생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재는 바로비터가 돼 버렸습니다.

요즘은 특히 심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환율 상승 행진을 전하면서 기러기아빠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가만히 앉아서 지출을 10%, 20%, 30% 늘려야 하는 기막힌 사정을 리얼하게 전달합니다. ‘피해자’의 대표 사례로 기러기아빠를 거론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기러기아빠는 정말 피해자일까요? 고환율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피해자일까요?

그렇습니다. 피해자입니다. 수직상승하는 환율에, 정부의 무력한 환율대책에 당한 피해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무감하게 넘길 수 있습니다. 기러기아빠가 고환율에 신음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언론을 굳이 타박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고환율의 여파를 손쉽게 취재할 수 있는 사례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기러기아빠는 ‘대표 피해자’일까요? 언론이 다른 사람들에 앞서서 대서특필해야 할 만큼 민생고를 상징하는 존재일까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일부’일 뿐입니다. 고환율과 고물가가 헝클어놓은 민생의 여러 부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층위가 다른 부분입니다. 민생고의 ‘표준’에 입각해 보면 기러기아빠는 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식과 부인의 해외체류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기러기아빠는 ‘등 떠밀린’ 존재가 아닙니다. ‘자진해서’ 그 자리에 선 존재입니다.

바로 이 점이 규정합니다. 고환율에 따른 민생고를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논의를 모으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러기아빠는 우선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풀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언론의 기러기아빠 보도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기러기아빠가 마치 고환율·민생고의 대표 피해자인 양 묘사하는 보도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조금 더 나가보겠습니다.

잊을 만하면 나옵니다.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짚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합니다. 조기유학이 자녀의 학습능력 향상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조기유학이 자녀의 문화적 정체성을 해치지는 않는지, 조기유학이 실패로 끝날 경우 자녀의 인생에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짚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보도도 있었습니다. 재미동포인 김승기 씨가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미국 14개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국인 학생 1400명을 분석한 결과 44%가 중도하차했으며 그 이유는 지나친 학업위주의 교육방식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도에 기러기아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데도 분리해서 보도합니다. 조기유학은 무역수지 지표를 거론하거나 영어교육문제를 논의할 때 등장시키고, 기러기아빠는 환율이 뛰어오르거나 중년 남성의 고독과 돌연사를 운위할 때 등장시킵니다.

이러니 묻혀버립니다. 기러기아빠의 날갯짓이 생산적인지, 기러기아빠의 고독과 고통이 값진 것인지는 부각되지 않습니다.

종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환율에 신음하는 기러기아빠의 실상을 전하려거든 그 신음의 생산성을 함께 짚고 충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