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고무돼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소기의 성과를 냈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세균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회동을 한 직후 민주당 지도부가 보인 모습이 이랬다. 이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대하겠다고 했다며 민주당은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생산적”이었다고도 했다.
하루만이다. 그러고나서 하루만에 문건이 공개됐다. 한나라당의 국정감사 전략을 담은 문건이었다. 이른바 ‘노무현 정부 15대 의혹’을 선정해 상임위별로 어떻게 공격할지 그 실행계획을 담은 문건이었다.
이 문건이 실행에 옮겨지면 민주당이 다친다. 전·현직 민주당 의원 여럿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민주당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른다(검찰의 ‘사정수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현재 진행중인 검찰 수사내용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게 온당한 일인지는 분명 짚어야 할 문제이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비유가 좀 ‘저렴’하긴 하지만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게 없다. 민주당은 몸 대주고 뺨 맞는 신세가 돼 버렸다.
애초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대접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올인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정책의 골간에 해당하는 법률안들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경제살리기’ 명분아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현할 법률안들을 통과시키려 하고, ‘법질서 확립’ 미명아래 반대세력 길들이기에 동원할 법률안들을 처리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기초입법’에 해당하는 작업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돌파’는 숙명이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주춤거릴 수가 없고 야당이 공격한다고 물러설 수가 없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 정책이 흐트러진다.
‘초당적 협력’에 목말라 하지 않아도 된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점하지 못했다면,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듬뿍 받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실정은 그렇지가 않다. 한나라당 의석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왜소 야당, 국민의 15% 안팎만이 지지하는 홀대 야당을 대접하기 위해 국정을 양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야당과 협상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다가 시한이 되면 절대 과반을 점한 의석 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후의 사정을 조금만 돌아봤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8대 국회 개원 협상이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누구의 비토로 원위치 됐는지,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한 45개 법률안이 뭔지를 조금만 살폈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번 정기국회 모드가 ‘전투’일 수밖에 없음을 쉬 알 수 있다.
이것 갖고 부족하다면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운영의 동반자”란 립서비스를 받기 훨씬 전에 이보다 더 한 대접을 받았던 사람이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그는 ‘국정의 동반자’일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로 치켜세워졌다. 말로는 그렇게 환대 받았지만 공천에서, 당 운영에서, 국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있지 않다(물론 박 전 대표 스스로 거부하는 면도 있지만).
현실이 이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개선장군이나 되는 양 행세했다. 제1야당의 위상을 확인했다고 자찬했다. 자칫하다간 여권에 휘둘리고 지지층에 비판받는 ‘동네북’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동반자’ 대접을 받게 됐다고 동네방네 떠들었다.
천지 분간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중심이 없다는 해석 외에 굳이 다른 걸 붙일 필요가 없다.
‘야성’이 뭔지 그 개념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25일 회동 모습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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